국회 미래통합당 당대표 회의실에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문구가 ‘변화 그 이상의 변화!’다. 4·15 총선 패배 직후에는 ‘국민 뜻 겸허히 받들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였는데 바뀌었다. 통합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처음 마주치는 것도 이 문구다. 어떤가. 변화를 향한 결기가 느껴지나.

보수정당이 변화를 내세운다는 것이 신선해 보인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 얘기를 빼고 넘어갈 수 없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성찰’이란 책에서 “변화시킬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보수를 지키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보수의 유언’이란 책에서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좀 더 쉽게 풀었다. “혁신을 통해 변신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다. 보수는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같이 중시한다. 수구와 다른 점이다.”

 

그 점에서 통합당은 방향을 썩 잘 잡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2월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제정한 정강·정책에서 ‘보수’란 말도 싹 빠졌다. 그전 자유한국당 때는 ‘산업화의 주역인 보수정당’이란 게 강령에 명시돼 있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수당의 변화 진정성은 있나

그렇다면 문제는 진정성이다. 번지르르하게 구호만 외치면서 실제론 딴짓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다. 현재 통합당 지도부는 비상대책위 등에 참석할 때 ‘규탄 민주주의 붕괴 민주당 갑질’란 리본을 달고 있다. 일견 국회가 민주당 독주·독식 체제로 굴러가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달 말로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국회 상임위원회 17개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해명했다. “긴 시간 최선을 다해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통합당 불참 상태에서 원을 구성해 송구스럽다. 국민의 삶을 챙기고 기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룰 수 없었다.” 사실 통합당 내에선 법사위원장을 차지하지 못할 바엔 나머지 상임위원장도 맡지 말자는 주장이 우세했다. 차라리 ‘거대여당’에 독식·독주 프레임을 씌우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여당에 독재 프레임을 씌웠다. 의원총회 발언과 SNS 게시글 등을 통해 “한국의 의회민주주의가 무너져내렸다. ‘민주화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목졸라 질식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당독재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도 했다. 여기서 종북색깔론은 매우 가깝다. 통합당이 최근 내건 민주당 의회독재 규탄 현수막엔 이런 것도 있다. ‘북한과는 협력, 야당에는 협박?’

친재벌 성장주의, 개발독재, 정보통치에는 원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민주화세력을 일당독재라고 비난한다. 낯설고 생뚱맞은 모습이다. 물론 민주당의 독주가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보수정당은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했다. 한국당 강령에는 아름다운 문구가 있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시대정신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변화하고 개혁하는 정의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는. 오래된 일이지만 2012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제기한 ‘뼛속까지 쇄신론’도 있었다. 그는 “당의 인적쇄신, 정책쇄신은 물론 당명을 바꾸는 것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숱한 쇄신 다짐하고 안바뀐 이유

그 시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은 ‘보수 탈색론’을 주장했다. 정강·정책에서 보수란 말을 빼자는 것이었다. 보수라고 하면 젊은층에서는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그 지경이 된 건 그들이 보수가 아니라 사이비 보수였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극우색깔론을 펴고 복지 포퓰리즘 타령을 하는 집단, 자신의 기득적 이익만 보수하려는 수구세력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통합당은 지금 변화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살 길은 변화밖에 없다. 그런데 실패로 끝난 과거 개혁사례들이 자꾸 생각난다.  2020-07-09 12:21:46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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