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담은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 4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은 ‘과연 이번에는 될까’였다. 그동안 이 문제는 숱하게 현안으로 떠올랐다가 흐지부지됐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건 쉽게 말하자면 ‘국민이 사장을 뽑는다’는 의미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가. 그렇다. 어째서인가. 답은 ‘관행’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공영방송 3사/디자인 안혜나 미디어오늘 기자

 

KBS를 예로 들면 이사회가 오랜 기간 동안 여권 추천 인사 7명과 야권 추천 인사 4명으로 구성돼온 관행 말이다. 역시 공영방송으로 간주되는 MBC도 이사 9명의 여야 추천 비율이 6 대 3인 관행이 유지돼왔다.

정윤식 강원대 교수는 책 ‘공영방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두환정권은 방송 공영화를 명분으로, KBS를 축으로 공영방송제를 도입했다. 영국 독일 등의 공영방송이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목적으로 도입한 방송 제도라고 한다면 한국은 정권의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 통폐합 조치의 일환으로 정착된 것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이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말이다.

정치권력 방송장악 욕심 바뀌지 않아

정치권력의 욕심은 그 뒤로도 지속됐다. 대통령이 지명하거나 여야 추천으로 임명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5명이 공영방송 사장·이사를 추천하는 현행 방식은 정치권력의 입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아래서 권력의 방송장악을 강하게 비판하던 현 정부와 여당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에 별다른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오죽하면 방송기자연합회가 성명에서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에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는데도 여당인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당사자인 언론계조차 발전적인 논의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라고 탄식했겠는가.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정필모 의원실

정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이사후보 추천 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선출된 인사들로 KBS·MBC·EBS 이사를 각각 13명씩 뽑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이렇게 구성된 각 공영방송 이사회는 사장 선출시 ‘사장후보 국민추천위원회’를 만들어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공영방송의 독립과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작고한 고 이용마 MBC 기자가 제안했던 ‘국민에 의한 공영방송 사장 선출’ 방식에 가장 가깝다고 할 만하다. 공영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을 차단하고 공영방송의 통제권을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실질적인 공영방송의 독립을 이루자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여권 추천 이사가 7명을 차지하는 관행으로는 KBS는 정부·여당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KBS 이사회의 정파성 논란은 정권과 상관없이 제기됐다. 보수진영은 노무현·문재인정부의 공영방송을, 진보진영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공영방송을 정부의 선전 도구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 개정안에도 문제점은 발견된다. 개정안은 방통위가 100명의 이사후보 추천 국민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방송분야에 관한 전문성이 있는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한 점이 그렇다. 방송 분야의 범위와 전문성의 정의가 모호해 의견의 반영 절차와 방식을 놓고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변화 논의 자체가 소중한 시도

또 한국PD연합회는 성명에서 “지역 성별 나이를 고려해 균형 있는 국민위원회를 선정할 때 정치권력의 입김을 배제할 강력한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의심스럽고, 방통위원 선임방식을 그냥 둔 채 그 산하에 위원회를 두는 게 합리적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법안들이 확정되기까지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발의된 개정안은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해온 중요한 의제에 다시 불을 붙인 소중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여야 정치권이 개정안 발의를 계기로 활발한 의견개진과 입법활동에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2020-12-01 12:31:12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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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은 새로 선출된 김종철 정의당 대표를 ‘구원투수’라고 표현했는데 꽤 적절한 은유다. 당 안팎으로 침체기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가라앉은 분위기이며 시야를 진보진영으로 넓혀봐도 그렇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구원투수가 필요하다. 

진보정당사를 돌아보면 2004년이 가장 빛나는 해였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그해 4월 총선에서 처음 원내 진출한 데다 10석이나 얻었다. 정당 득표율도 13%를 넘었다. 그러나 이후 진보정당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지지율을 깎아먹는다. 분열과 분당이 퇴조의 큰 이유로 꼽힌다. 정의당 의석은 현재 6석, 지지율은 5%에 머물고 있다. 

 

김종철 신임 정의당 당대표(왼쪽)와 함께 경선에 나선 배진교 후보가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정의당 당사에서 꽃다발을 들고 손을 마주잡고 있다. /정의당 제공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변화없이는 2004년 진보정당의 역동적 모습이 ‘좋았던 옛시절’로 추억될 뿐이다. 그 첫단추로 정의당 당원들이 선택한 것이 김 대표다. 그는 50세로 원내 주요 정당 중 최초로 1970년생 대표다. 권영길·노회찬·심상정은 진보정치 1세대, 지난 4.15 총선 때 당선된 장혜영·류호정 등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출생은 3세대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1세대가 진보정치의 꽃을 피우도록 뒷받침한 2세대에 속한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김 대표가 정의당의 세대교체를 넘어 낡은 정치권 세대교체를 선도해 달라”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수는 없다”고 주문했다. 그를 선택한 당원들의 여론도 그랬다. 

확실한 변화 요구하는 당론 반영 

 

그는 당선 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의당에 확실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원 여론이 반영된 거라고 봅니다. 국민 여론도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제가 무난하지 않았고, ‘금기를 깨야 한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세게 던져서 당원들의 표를 얻은 게 아닌가 싶어요. 선거 과정에서 ‘정의당이 뭔가 새롭고 과감한 걸 시도해야 하는 시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 대표에게 변화를 주문하는 건 당연하다. 구원투수가 직구·변화구를 구사해야 하듯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어젠다도 제시해야 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해 ‘민주당 2중대’란 비아냥까지 감수했지만, 결국 비례 위성정당을 앞세운 거대 양당의 배신으로 입지 위축을 자초했다. 

 

지역구에서는 심 전 대표만 당선됐고, 비례대표 후보 중 5명만 국회의원이 됐다. 정의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덕을 볼 것이라는 전망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최근 집권여당의 경제정책은 우향우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가운데 상법 개정안에는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핵심인 집중투표제가 빠져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재계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에 대한 독자노선을 앞세운 김 대표와 정의당 입장이 중요한데 아직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정의당이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생각은 맞다. 새로운 의제로 떠오른 젠더·생태문제에 대해 그는 “반드시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정의당 위기의 원인을 의제 발굴 실패라고 진단하고 ‘진보의 금기’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런 열린 자세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낡은 의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4년 만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며 진보정당의 새 시대를 열었다. 17대 국회 막이 오르는 5월31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걸어서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영, 노회찬, 단병호, 권영길, 천영세, 심상정 의원.  /한겨레신문 김정효 기자


노동과 북한문제 외면해선 안돼

 

낡은 의제라고 한 것은 진보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항구성·숙명성이 있다는 의미에서다. 노동과 북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 두 의제에는 시효가 없다. 

 

김 대표도 취임사에서 두 어젠다와 관련한 구체적 제안을 내놓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평화군축 제안이다. 그는 “하루에 6~7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며 과로·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한 법률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함께 평화군축을 향해 나아간다면 남북의 청년 모두에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염원에 화답해주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세상은 넓고 진보가 할 일은 많다. 2020-10-20 12:11:16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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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권 때 ABR정서라는 게 있었다. Anything But Roh의 약자로, ‘노무현이 하던 것만 빼곤 뭐든지’란 뜻이다. 미국에 조지 W 부시정권이 들어선 뒤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과는 차별되는 정책을 ABC, 즉 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하던 것만 빼곤 뭐든지)라고 했던 것을 빗댄 말이었다.

단 두가지, 노 정권 때 시작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건설만은 예외였다. 당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은 두 사업이 전 정권에서 시작한 일인 만큼 민주당이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바꾸기라고 공격했다. 이것은 새 정권이 전 정권이 벌인 국가적 사업을 어떤 이유에서든 승계한 사례다.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 임대차3법 반대모임 등 3개 단체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파크원 빌딩 앞에서 열린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 반대하는 집회에서 정부를 규탄하며 신발투척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초장기 장마로 홍수피해가 극심해지자 보수 정치인들이 슬슬 이명박정권의 4대강사업 재평가를 주장하고 나선 건 어떤가. 홍수위험이 없는 본류를 깊이 파내려가면서 홍수예방을 주장한 것 자체가 허구였다. 그럼에도 정진석 통합당 의원 등이 4대강사업의 홍수예방 효과를 이슈화하고 있다.

이상돈 전 의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린 평가가 재미있다. “자신들의 어떤 존재의 근거를 거기다 그어놓은 것 같아요.” 2018년 감사원 감사 결과 4대강사업의 홍수피해 예방 가치가 ‘0원’이었음에도 이 사업이 치수와 홍수방지에 효과적이란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부동산값 전 정권 핑계는 웃기는 일

최근 불거진 부동산값 폭등사태는 이런 사례들과는 결이 확연히 다르다. 여기서 똑 부러지는 부동산 해법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그 부분은 난다긴다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집권당의 정신과 자세를 얘기하려고 한다. 여야 정치권은 이 악재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간 누적된 부양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여당의 항변에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김두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2014년 말 새누리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부동산 3법, 이른바 ‘강남 특혜 3법’ 통과로 강남발 집값폭등은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박덕흠 의원의 부동산 시세차익이 각각 23억원, 73억원이라며 “자기들이 저지른 집값폭등 책임을 현 정부에 뒤집어씌우는 일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송석준 통합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은 “이 정부 출범이 3년2개월 됐는데도 전 정권을 탓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황규환 부대변인도 “22번의 대책을 내놓고도 아직까지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졸속, 무능한 정책임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지난 3년간 내놓은 부동산정책은 23차례였다.

더 아픈 건 우군으로 여겼던 정당과 시민단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2014년 나온 법이 현재 부동산 폭등의 주범이라고 할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경실련의 김헌동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집값폭등이 현 정부 탓만이 아닌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권 3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남탓을 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흔히 생각하듯 권력은 정치권력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권력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했다. 이에 비해 여전히 힘센 권력은 야당권력 언론권력 재벌권력 사학권력 종교권력 등 ‘유사권력’들이다. 일부는 이 시대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무기로 삼아 잃어버린 기득권 헤게모니를 되찾으려 ‘반란’을 일으킬 기세다.

야당도 낙제점이지만 더 큰 책임은 여당

그럼에도 다시 새겨야 할 것은 집권했다는 것의 의미다. 쉽게 비유하면 그건 칼자루를 쥐었다는 뜻이다. 물론 칼자루를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휘두르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처음으로 통합당에 추월당했다.

지금 여의도에는 민주당에 ‘민주가 없고’, 미래통합당의 ‘미래를 모르겠다’는 말이 돈다. 여도 야도 환골탈태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책임이 훨씬 더 막중한 것은 어디까지나 칼자루를 쥔 집권당이다. 전 정권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그런 것일까. 아서라, 정신 차리기 바란다. 2020-08-14 12:47:26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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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미래통합당 당대표 회의실에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문구가 ‘변화 그 이상의 변화!’다. 4·15 총선 패배 직후에는 ‘국민 뜻 겸허히 받들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였는데 바뀌었다. 통합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처음 마주치는 것도 이 문구다. 어떤가. 변화를 향한 결기가 느껴지나.

보수정당이 변화를 내세운다는 것이 신선해 보인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 얘기를 빼고 넘어갈 수 없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성찰’이란 책에서 “변화시킬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보수를 지키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보수의 유언’이란 책에서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좀 더 쉽게 풀었다. “혁신을 통해 변신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다. 보수는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같이 중시한다. 수구와 다른 점이다.”

 

그 점에서 통합당은 방향을 썩 잘 잡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2월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제정한 정강·정책에서 ‘보수’란 말도 싹 빠졌다. 그전 자유한국당 때는 ‘산업화의 주역인 보수정당’이란 게 강령에 명시돼 있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수당의 변화 진정성은 있나

그렇다면 문제는 진정성이다. 번지르르하게 구호만 외치면서 실제론 딴짓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다. 현재 통합당 지도부는 비상대책위 등에 참석할 때 ‘규탄 민주주의 붕괴 민주당 갑질’란 리본을 달고 있다. 일견 국회가 민주당 독주·독식 체제로 굴러가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달 말로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국회 상임위원회 17개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해명했다. “긴 시간 최선을 다해 협상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통합당 불참 상태에서 원을 구성해 송구스럽다. 국민의 삶을 챙기고 기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룰 수 없었다.” 사실 통합당 내에선 법사위원장을 차지하지 못할 바엔 나머지 상임위원장도 맡지 말자는 주장이 우세했다. 차라리 ‘거대여당’에 독식·독주 프레임을 씌우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여당에 독재 프레임을 씌웠다. 의원총회 발언과 SNS 게시글 등을 통해 “한국의 의회민주주의가 무너져내렸다. ‘민주화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목졸라 질식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당독재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도 했다. 여기서 종북색깔론은 매우 가깝다. 통합당이 최근 내건 민주당 의회독재 규탄 현수막엔 이런 것도 있다. ‘북한과는 협력, 야당에는 협박?’

친재벌 성장주의, 개발독재, 정보통치에는 원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민주화세력을 일당독재라고 비난한다. 낯설고 생뚱맞은 모습이다. 물론 민주당의 독주가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보수정당은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했다. 한국당 강령에는 아름다운 문구가 있었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시대정신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변화하고 개혁하는 정의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는. 오래된 일이지만 2012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제기한 ‘뼛속까지 쇄신론’도 있었다. 그는 “당의 인적쇄신, 정책쇄신은 물론 당명을 바꾸는 것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숱한 쇄신 다짐하고 안바뀐 이유

그 시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은 ‘보수 탈색론’을 주장했다. 정강·정책에서 보수란 말을 빼자는 것이었다. 보수라고 하면 젊은층에서는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그 지경이 된 건 그들이 보수가 아니라 사이비 보수였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극우색깔론을 펴고 복지 포퓰리즘 타령을 하는 집단, 자신의 기득적 이익만 보수하려는 수구세력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통합당은 지금 변화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살 길은 변화밖에 없다. 그런데 실패로 끝난 과거 개혁사례들이 자꾸 생각난다.  2020-07-09 12:21:46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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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사망한 사건이 촉발한 항의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충남 천안에선 계모에 의해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혔다가 중태에 빠진 9살 초등학생이 끝내 숨졌다. 두 비극적 사건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백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크로법이 1965년 폐지됐음에도 아직도 상존하는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 인종갈등의 필연적 결과란 성격이 있다.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 무릎에 짓눌려 숨져간 시간 8분 46초는 이중의 상징성을 획득했다. 하나는 미국 사회에 여전한 인종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항의다.

초등학생 사망사건도 구조적 모순의 결과란 점은 똑같다. 지난해 9월 인천에서는 5살 남자아이가 손발이 묶인 채 계부에게 맞아 숨진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2년여 동안 보육원에 있다가 계부와 친모 집으로 가 26일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지난 1월엔 경기도 여주에서 9살짜리 남아가 찬물이 담긴 욕조에 1시간 가량 앉아있다가 숨졌다. 사건의 성격이 단발성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미국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 행위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추도식이 8일(현지시간) 텍사스 주 휴스턴의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 교회에서 열리자 그의 관 앞에 조문객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플로이드의 동생인 필로니즈 플로이드는 백인 경찰 폭력에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우리는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휴스턴|AFP연합뉴스

‘정의’를 회의하게 만드는 사건들

이 사건들은 ‘정의’(Justice)란 관점에서 보면 더 분노를 치밀게 한다. 정의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생각하면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사건이 ‘정의는 승리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아니 더 솔직히 플로이드 사건이나 초등학생 사망사건이나 모두 정의가 패배한 사건이다. 일차적 감각으론 그렇다. 어디까지나 약자인 피해자들이 백인 경찰 무릎에, 계모의 폭력에 속절없이 희생당한 것이다.

플로이드 사건을 관찰하면 정의 문제가 자주 호출되는 것이 눈에 띈다. 가령 지난 3일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뉴욕 시내에서 행진하는 뉴스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이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시위에서도 시민들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한 흑인 대학생은 “결단코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4일 그가 숨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노스센트럴대학교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플로이드의 유족들도 정의를 거론했다. “우리는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원하며, 그는 그것을 갖게 될 것이다.” 8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교회에서 엄수된 마지막 추도식에서도 플로이드의 동생은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우리는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울먹였다.

필자는 경향신문 퇴직을 앞둔 2013년 12월 ‘희망은 잔인한 거다’란 마지막 칼럼을 썼다. 칼럼은 ‘서현이의 짧고 불행한 삶’에 대한 애도로 시작한다. 두달 전 ‘소풍을 가고 싶다’고 의붓엄마한테 말했다가 폭행을 당해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며 숨진 8살 이서현양 얘기다.

당시에도 아동복지법이 있었고,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기 직전이다. 그러나 제2, 제3의 서현이는 계속 나오고 있다.

아직 희망을 접지 말아야 할 이유

정말 정의는 패배한 것일까. 또 앞으로도 그럴 건가. 첫째 질문엔 대답이 궁하다. 때에 따라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둘째 질문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실이 어둡다고 해서 희망을 호출하는 것마저 단념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칼럼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이유다.

미국에선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55%의 지지를 얻어 41%에 그친 트럼프 대통령을 14%p 앞섰다는 것이 며칠 전 CNN 방송 보도였다. 플로이드 사건 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대응으로 일관한 데 따른 역풍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의는 패배할 것인가.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계 전설적 감독 요기 베라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를 두고 한 말이지만 이런 낙관적 자세는 다른 분야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2020-06-11 12:30:32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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