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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코로나 사태, ‘오직 연결하라’가 답이다

영국 작가 E. M.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부터 소개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작가는 성격과 출신,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안, 즉 세속적인 윌콕스가(家)와 이상을 추구하는 슐레겔가 남녀의 대립과 ‘연결’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1993년 이 책을 번역했던 필자가 지금도 기억하는 게 있다. 이 책 속표지에 있는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란 특이한 헌사다. 이 말이 중요한 건 바로 여기에 소설의 주제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하워즈 엔드'(1992)의 한 장면. 헨리 윌콕스로 분한 앤서니 홉킨스(왼쪽)과 매거릿 슐레겔로 분한 엠마 톰슨. 두 집안 남녀의 대립과 ‘연결’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헌사는 스토리가 대립 상태로부터 연결 상태로 옮겨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원래 꽉 막힌 성격이었던 남자 주인공 헨리 윌콕스가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대책을 발표한 게 지난 3월 22일이었다. 지난 6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이행하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접촉자들이 무더기로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생활방역의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일부 목소리도 있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포스터가 ‘하워즈 엔드’의 화두로 삼은 ‘오직 연결하라’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정반대되는 개념일까. 양자는 대립·충돌하는 것인가. 언뜻 보기엔 그런 것 같다. 포스터가 말하는 연결은 가족 간의 조화·결합에 방점이 찍힌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병 유행을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연결’ 중요성 더 확인

그러나 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오직 연결하라’의 정신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절대 필요하다. 이른바 ‘정신 승리법’만 믿으면 큰일 난다.

사회적 거리두기든 생활 속 거리두기든 그것은 그것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서 포스터의 화두를 따르자는 말이다. 필자는 코로나 사태의 해결책도 ‘오직 연결하라’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오직 연결하라’를 발상을 바꿔 이해하면 된다.

“코로나 사태로 확인된 중요한 것 하나는 ‘연결되고 싶은 존재’로서의 우리들”이라고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은 최근 칼럼에서 말했다. 그는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해 모래알 같다던 현대인들이 얼마나 연결되어 살아왔는지를 새삼 확인한다고 했다. 아이들 입에서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며,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학교’라기보다는 ‘커뮤니티’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결의 미덕을 강조하는 사람은 또 있다. 정 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연결에 답이 있다”라며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명함에 ‘소다연강미(小多連强美)’ 다섯 한자를 새겨둔 지 오래라고 한다. ‘작아도 많고 이어지면 강하고 아름답다’라는 우리말 풀이도 함께 적었다. 소설가 포스터나, 장 편집장이나, 정 교수나 생각은 대동소이한 것 같다.

벌써 많은 시민들이 이런 ‘연결’을 실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나 자치단체들이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착한 기부’ 운동이 활발하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들은 2월 자영업자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건물 임대료를 10% 이상 내리기로 했다.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공적마스크 구매 기회를 양보하거나 마스크를 기부하는 ‘착한 마스크’ 캠페인도 일어났다.

‘착한 연결’ 실천하는 시민 많아

‘착한 소비’ 운동도 활발하다. 경기도는 학교급식 중단으로 피해를 본 친환경 농산물 계약재배 농가들을 돕기 위해 9차례나 ‘착한 소비’ 운동을 벌여 10억여원어치를 판매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라는 게임이 있다. 미국 유명 배우 이름을 딴 이 게임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보았을 때 다른 배우들이 케빈과 몇 단계 만에 연결될 수 있는지를 맞추는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부분 여섯 단계 이내에 케빈과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직 연결하라’를 주제로 썼지만, 할리우드 영화계란 사회도 생각보다 매우 좁은 사회임을 일깨워준다.  2020-05-13 12:32:4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