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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정치가 꼭 필요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다양한 계기로 정치에 뛰어든다.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 경력을 갖고 있는 전현희 의원은 2001년 혈우병 환자 중 20여명이 에이즈에 집단감염된 사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것이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였다. 긴 세월 소송을 하며 문제많은 이 사회를 정치를 통해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한다.

 

‘태호 엄마’ 이소현씨(37)는 평범한 주부이자 워킹맘으로 살다가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정치판에 뛰어든 경우다. 불행한 사건이란 지난해 5월 인천에서 발생한 사설 축구클럽 통학차량 사고다. 운전자가 과속 및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내면서 이씨는 아들 김태호군(8)을 잃었다. 동승한 유찬군도 세상을 떠났다. 사고 후 대한항공 승무원 일을 쉬고 국회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태호·유찬이가 탄 차량이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란 폭탄’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태호 등이 탄 차량은 노란색 승합차였고, 부모들은 그것이 어린이 통학차량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설 축구클럽은 법이 규정하는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대상이 아니었다. 현재 이정미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로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통학차량을 통학버스 신고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이씨는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열두번째 영입인재로 입당했다. 입당식에서 그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 아이들의 안전보다 정쟁이 먼저인 국회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치에 직접 뛰어든 목적이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태호, 해인이, 민식 군 부모들이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을 붙잡고 어린이생명안전법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영정사진을 든 사람이 태호 엄마 이소현씨다. /오마이뉴스 남소현 기자

태호·유찬이법 국회 행안위 문턱 못넘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태호·유찬이법을 비롯해 하준이법 민식이법 한음이법 해인이법 등 5개다.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희생된 어린 생명들의 이름을 딴 별칭으로 불린다. 이중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 관련)과 하준이법(주차 시 안전조치 관련)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씨가 직접 당사자인 태호·유찬이법과 해인이법, 한음이법은 국회 행안위 문턱도 넘지 못한 상태다.

아이들 안전에 관한 이씨의 생각은 이후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해졌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캠페인이라든가 사회활동이라든가,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 할 일은 많은데 왜 하필 정치판에 가서 저러냐 같은 댓글을 보곤 해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정치가 꼭 필요하더라고요. 법안이 있어야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진다는 것, 누군가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하더라고요.”

‘정치가 꼭 필요하더라’ ‘정치 없이는 (세상이) 바뀌기 힘들다’는 생각은 뜻밖의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엄마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가령 ‘등대지기’ 같은 삶을 생각할 수 있다. 등대지기는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묵묵히 자기일에 충실하며, 이웃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은유한다. 이 사회가 유지되는 건 이들 등대지기, 즉 평범한 민초와 장삼이사 덕택이지 정치인 덕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 유지되는 건 정치인보다 민초 덕

또 정치적으로 어떤 지배 권력도 없는 사회, 경제적으로 만인이 풍요롭게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아나키즘 운동도 있다. 얼마 전에는 청년 정당인 브랜드뉴파티 조성은 대표(32)가 “진보진영에 환멸을 느낀다”며 미래통합당 합류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어떤 이념을 선택하든,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하든, 탈정치를 꿈꾸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정치 신인 ‘태호 엄마’는 앞으로 숱한 고비를 넘어야 한다. 4.15총선에서 지역구 출마인지 비례대표 출마인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에게 제기되는 회의론도 만만치않다. ‘사연 가진 분이 들어온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거나 ‘입문 동기는 이해하지만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하는 지적이다. 그 대답도 그의 몫이다.

2020-02-24 13:59:5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