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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김민기

1972년 여름 마산 수출공단의 노동자들과 해변으로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막 석양이 지는 바닷가로 하나 둘씩 돌아오는 고깃배들을 바라보다 그는 “야, 참 멋있는데”하고 중얼거렸다.
그 때 옆에 있던 여성 근로자가 쏘아 붙였다. “그 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어요. 뭐가 멋있다는 거지요?” 그 때 그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이 작은 체험이 그 자신의 지식인적 사고방식과 감성적 기반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민기에 관한 글의 일부이다. 그는 서울대 회화과 재학 시절이던 1970년 양희은에게 데뷔곡 ‘아침이슬’을 비롯해 많은 노래를 만들어 주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뚜렷한 정치성이 없는데도 1975년 방송금지곡이 되었다. 김민기도 1971년 독집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지만 얼마 안가 레코드가 전량 압수됐다. 그 후로 그는 수없이 방송금지와 연행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김민기는 자신이 투사로 불리는 것을 꺼린다. 그는 최근 TV 회견에서 “노래 때문에 많은 기관에 가서 맞아도 보았고 의도 없이 만든 노래에 대한 추궁도 당했다”면서 정작 자신은 “싸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그는 70년대의 민중가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고교 3년 때 지었다는 ‘친구’는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노래로 그 화성과 선율,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이 곡은 어느 사이에 학생들이 데모하다 끌려간 친구들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로 ‘전용’되었다.

김민기는 이제 작곡가·가수보다는 한국적 뮤지컬의 창시자, 연극 연출가, 기획자로 익숙해져 있다. 극단 학전 대표로서 그가 번안 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지난달 29일로 3,000회 공연을 돌파했다. 뮤지컬의 12년째 공연은 척박한 토양에서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김민기는 별 것 아니라며 쑥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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