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있어 끊임없이 편을 가르려는 경향이 존재해온 건 사실이다.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 ‘유행의 시대(원제: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 2011)’에서 이렇게 썼다.

“선천적으로 ‘고급문화’라는 것, 엘리트 취향이라는 것이 있었고, 전형적인 중류층의 평범하거나 ‘속물적인’ 취향과 하류층이 열광하는 ‘천박한’ 취향이 존재했다. 그것들을 뒤섞는다는 것은 물과 불을 섞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은 진공을 꺼리지만, 문화는 혼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bts가 세계적인 음악가와 협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ytn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 짓기’에서 문화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유용한 도구로 드러내 보이고, 의식적으로 계급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것을 보호하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문화란 계급 구분과 사회적 계층을 만들어내고 보호하려고 고안된 기술이다.”


바우만과 부르디외가 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편 가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 건 딱 맞는 분석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이분법’을 보면 그렇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청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진행된 문화예술위원 공모 과정에서 대중문화는 문화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자연 현 가수협회장을 원천 배제했다고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이 협회장이 문화예술위원 공모에 신청을 하자 ‘내정자가 있고, 대중가요가 문화예술위원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납득키 어려운 이유를 들어 접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문화예술위는 문화예술의 범위를 순수예술·클래식으로 한정하고 12명 위원 전원을 순수 예술이나 학문 분야의 위원들로만 채웠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기금관리형 준 정부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가 이런 고루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문화예술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설립목적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위원회는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전통예술, 다원예술 등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합의하고 있는 기초예술 분야와 문화산업의 비영리적 실험영역을 대상으로 그 창조와 매개, 향유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것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역점을 둘 것입니다.”

기초예술 분야, 비영리적 실험영역…. 어째서 ‘대중가요가 문화예술위원회에 들어온다는 것은 모순’인지에 대한 해명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도리어 더 모호해질 뿐이다. 대중가수가 예술로 인정받아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중문화 홀대는 심해도 너무 심한 시대착오적 자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론에도 불구하고 문화에는 순혈주의를 거부하고 뒤섞이려는 경향 또한 뚜렷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클래식·발레·연극·국악·대중음악'으로 구성된 '그라제 공연예술축제'가 이달 초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졌다.


미국 인지심리학자, 뇌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책 ‘호모 무지쿠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고전음악은 다른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음악이란 것이다.‘어떻게 로큰롤이라고 하는 반복적이고 요란한 쓰레기를 감히 위대한 거장들의 숭고한 음악에 갖다 댈 수 있다고 하는 거지?’


이런 입장은 위대한 거장들에게 기쁨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주요 원천이 바로 당대의 ‘흔해빠진’ 대중음악이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모차르트와 브람스, 바흐조차 방랑시인의 발라드와 유럽의 민속음악, 동요에서 많은 선율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리듬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선율은 계급이나 교육, 환경을 가리지 않는다.”

‘어떻게 로큰롤이라고 하는…’이라는 그의 말에 로큰롤 대신 ‘뽕짝’이나 ‘유행가’를 집어넣어보면 우리 현실과도 통하는 얘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체부 조사결과 BTS 빌보드 1위의 경제효과가 1조7000억 원에 달하고,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 등에 5년간 7700억 원 투자로 5조6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누렸다.


정 의원은 “대중문화는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대표해 전 세계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며 “막힌 생각과 관점으로는 창작도 예술도 국민께 감동을 드리기 어렵다. 우리 문화예술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한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예술이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개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1.10.11 19:00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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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연결하라

논객닷컴 2021. 9. 17. 21:41

오래 전 필자는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를 번역·출간한 적이 있다. 속표지의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는 특이한 제사(題辭)가 지금도 기억난다. 여기에 소설의 주제가 압축돼 있다. 작가는 성격과 출신,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안, 즉 세속적인 윌콕스가(家)와 이상을 추구하는 슐레겔가 남녀의 갈등과 화해를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는 스토리가 ‘대립으로부터 연결로’ 옮겨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하워즈 엔드'(1992)의 한 장면. 헨리 윌콕스로 분한 앤서니 홉킨스(왼쪽)과 매거릿 슐레겔로 분한 엠마 톰슨. 두 집안 남녀의 대립과 ‘연결’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건 최근 한 기사를 읽으면서다. 유엔 산하 환경재해 연구기관인 유엔대학 환경 및 인간안보연구소(UNU-EHS)는 지난 8일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보고서 제목이 ‘상호 연결된 재해 위험 2020/2021(Disaster Risks in an Interconnected World)’였다. 소설이나 보고서나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보고서는 북극 빙하를 녹인 폭염과 미국 텍사스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일으킨 한파, 브라질 아마존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에서 중국의 주걱철갑상어 멸종 등 지난 1년간 발생한 10가지 굵직한 재난을 분석했다. 보고서가 다룬 10개 재난은 아마존 산불, 북극 폭염, 텍사스 한파, 코로나19 대유행, 사이클론 암판, 아프리카 사막 메뚜기떼,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사고, 베트남 홍수, 양쯔강 주걱철갑상어 멸종,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파괴 등이다.

불에 탄 브라질 아마존/보고서 갈무리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전 세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별개의 재난들은 탄소 배출과 환경 파괴를 고리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었다. 더 압축하면 이렇다. “모든 재난은 연결돼 있다.”

목하 진행중인 코로나19 사례를 통해 재난의 연결 관계를 살펴보자. 근본적 발생 원인은 항상 인간에서 시작한다. 환경 파괴는 인간과 야생동물의 거리를 좁혀놓았다. 자연 서식지가 파괴되면 인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야생동물과 가까워지는데 그건 그들이 지닌 질병과 가까워지는 것도 포함된다. 코로나19도 동물에서 비롯한 질병인데 동물 시장 등을 거쳐 인간에게 전달됐다. 인플루엔자, 에볼라, 에이즈, 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재난은 다른 재난과 결합해 더 큰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방글라데시 남서부 순다르반 지역 주민 절반은 빈곤층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치자 해외에서 일하던 많은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왔고, 사이클론 대피소에 수용됐다. 1999년 이후 가장 강력한 사이클론인 암판이 몰아쳤지만 주민들은 대피소를 기피했다. 사이클론은 6000개 1차 건강센터를 망가뜨렸고, 건강관리 시스템을 악화시켜 코로나 대유행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암판으로 130억 달러 피해, 49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엔 보고서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도 섬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우리 모두에게.” 이 대목은 묘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란 기도시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섬은 아니다.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한 부분이다. …어떤 이의 죽음은 나의 감소를 의미한다,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봄부터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장사에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 가운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벌어지고 있다. 언제 코로나 시대가 끝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유엔 보고서도 코로나 종식에 관한 언급은 없다.

나는 역설적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어버리자거나 이른바 ‘정신 승리법’을 믿자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직 연결하라’는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확인된 중요한 사실은 ‘연결되고 싶은 존재로서의 우리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모래알 같다던 현대인들이 얼마나 연결돼 살아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기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연결’을 실천하고 있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은 한 칼럼에서 “아이들 입에서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며,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학교’라기보다는 ‘커뮤니티’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직 연결하라’가 답이다. 
2021.09.17 14:07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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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뜬금없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이유를 두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는 문제 제기 방식의 가벼움이다. 이 대표는 라디오와 TV에 나와 이 주장을 폈다. CBS 라디오에서는 “보수 쪽 진영은 원래 작은 정부론을 다룬다. 현재 정부 부처가 17~18개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많다. 여성가족부나 통일부 이런 것들은 없애자”고 말했다. 앞서 SBS 인터뷰에서도 여가부 폐지 목소리를 냈다.

 

 자신이 보기에 성과가 미흡하다고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뿐더러 정부 조직 존폐를 이렇듯 가볍게 제기하는 것도 문제다.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 치밀한 당내외 여론 수렴을 거쳐 정책화해야지 라디오나 SNS에서 툭 던질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 13일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둘째는 그 내용이다. 방식의 가벼움은 논외로 치고라도 여가부·통일부 해체 주장이 얼마나 타당하냐는 것이다. 먼저 여가부의 경우를 보자.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3월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2021(Global Gender Gap Report 2021)’에 따르면 남녀평등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102위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 156개국 가운데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취업 형태, 임금 수준, 승진 기회 등 각종 지표들은 한국 사회의 여성이 넘어야 할 차별의 벽이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표는 여가부 폐지 주장부터 할 게 아니라 이런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기존 여가부의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대안부터 제시하는 게 순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여가부 폐지는 옳지 않고, 추가적인 차별 시정을 위해 확대 재편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능을 키워야지 왜 없애나”라고 반박한 건 이런 맥락이다

 

 통일부 폐지론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가 사실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란 점을 유념할 때 한국에서 나오는 통일부 폐지론은 ‘해외토픽감’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분단국가로는 중국과 대만,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도 있으나 첨예한 대립 상황은 우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수장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분단을 극복하고 해소할 기관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주요 정책이나 부처는 나라마다 다양하다. 그 나라가 처한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대한민국이 작은 정부를 지향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는 업무를 ‘외국’을 상대로 교섭행위를 전담하는 외교부에 통합시키자는 말은 (통일부를) 없애자는 얘기보다 더 무식한 말이다”고 했다.

 

 필자는 이 대표의 부처 폐지 주장을 보며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혹시 이 대표가 아나키스트 아닐까?’라는. 아나키즘은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이에 반대되는 일체의 현상이나 태도를 거부한다. 국가권력 및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는 건 당연하다. 절대적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대표 선거 당시 ‘이대남(20대 남성)’의 분노와 박탈감을 부추겨 승리했다는 평가와 평소 드러내는 능력주의적, 경쟁만능의 사고를 감안하면 이런 호기심은 너무 나간 것 같다.

 

  그보다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진단이 와닿는다. 그는 일전 SNS에 이렇게 꼬집었다. “이준석이 여성부 폐지를 내걸고 뻘짓하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니, 출구전략으로 애먼 통일부를 끌어들여 철 지난 ‘작은 정부’ 타령 모드로 갈아탔다”며 “(여가부 폐지가) 여성혐오 코드가 아니라 신유주의 코드라고 변명하는 거다. 공부가 안 돼 있으니 뻘짓은 이미 프로그래밍 돼 있는 셈이다.”

 

 36세의 ‘0선’인 정치인 이준석이 보수 야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반응은 한마디로 ‘기대’였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그랬다. 한 보수 신문은 “이준석 바람은 이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다”란 사설을 썼다. 또 한 진보 매체는 낡은 보수와의 완전한 단절을 주문했다. 이 땅의 보수 정당들은 극단적 반공·반북주의, 맹목적 친미, 색깔론 등 ‘보수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낡은 이념과 정책에 의존해왔다며 “이 대표가 진정한 변화를 시도한다면 이 문제들에서 명확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가 의구심으로 바뀌는 데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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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혐오범죄 7% 줄었지만 아시안 혐오범죄 150% 증가>

 

며칠 전 신문에서 ‘호신용 페퍼스프레이’란 칼럼을 읽었다. 뉴욕에 사는 한국여성이 그런 제목의 글을 쓴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미국에서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아시안 혐오범죄 때문이다.

 

필자는 “뉴욕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주에 사는 아시안 친구들은 테이저건이나 권총에 보디캠까지 장착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안심이라며 정보교류 중”이라고 했다. 그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 피부에 와 닿는다.

(뉴욕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미국 뉴욕에서 4일 시위대가 증오범죄에 맞서 흑인과 아시아계가 연대할 것을 촉구하며 '흑인+아시아인'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는 사는 게 전보다 불안해졌다. 지난해 혐오범죄는 7% 줄었지만 아시안에 대해서만 150% 증가했다. SAH라는 아시안 단체에서 아시안 혐오범죄 대처훈련은 4월까지 모든 예약이 순식간에 완료됐다고 한다. 길이나 마트에서 단지 아시아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쌍욕을 듣고 주먹질을 당하기도 한다.

 

작년 퓨리서치 센터가 9654명에게 물어보니 코로나19 이후로 미국 내 아시아인의 31%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경험했고, 26%는 누군가의 물리적 폭력이 두렵다고 답했다. 또 10명 중 4명은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더 흔해졌다고 응답했다.

 

지난 4일 뉴욕에서는 3000명의 시민들이 다소 이색적인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증오범죄에 맞서 흑인과 아시아계가 연대할 것을 촉구하며 ‘블랙+아시안’이란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한인여성 4명이 사망한 지난 달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마사지 업소 총격사건에서 보듯 미국 내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흑인과 아시아인이 연대하라는 시위까지 벌어지는 까닭은 뭔가.

 

가해자가 흑인인 경우가 적기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뉴욕 맨해튼에서 흑인 남성 브랜던 엘리엇(38)이 마주 보며 걸어오던 필리핀계 여성(65)에게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는 모친 살해한 전력으로 17년간 복역한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그는 아시아계를 비하하는 말을 하며 “당신들은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고 외쳤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편의점에서 24세 흑인 남성이 쇠막대기를 갖고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이 남성은 욕설과 함께 한인 주인 부부를 향해 “중국인 XX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같은 날 뉴욕 지하철에서도 50대 흑인 남성이 44세 아시아계 여성과 세 자녀에게 인종 비하 발언을 하며 두 차례 침을 뱉었다. 이 남성은 여성의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찬 뒤 도망쳤다.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임에도 미국에서 인종주의적 사건은 흔하다. 지난 11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흑인 청년 운전자가 경찰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벌어진 지역은 지난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목을 눌려 질식사한 사건과 가까운 곳이었다. 이 사건들에서는 백인은 갑, 흑인은 을이라는 전형적 갑을관계의 ‘철칙’이 작동했다. 그런데 최근 혐오범죄에는 다른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즉 인종차별 피해로 고통을 겪어온 흑인들이 새로운 가해자로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약자의 비극이 절실하게 와 닿는 건 강자와 투쟁할 때가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서로 지켜줘야 할 약자들 사이의 관계가 파괴될 때다. 그럴 때 우리는 강자와 싸울 때 느끼는 분노와는 또 결이 또 다른 감정, 당혹과 서글픔을 느낀다.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일까?

‘여적여’란 말이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의 줄임말로, 그런 시각으로 세상사를 보면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며느리 킬러는 시어머니였고, 신데렐라를 괴롭힌 사람은 새엄마와 언니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안 맞을 때 또한 많다. 이걸 생각하면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다. ‘약자의 적은 약자’란 말도 그렇다. 저소득층, 막노동꾼이 자기보다 더 약자인 예컨대 알바생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 이 말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더 많다.

 

미국 혐오범죄도 그렇다. 아시아계를 공격하는 측이 주로 흑인으로 알려졌지만 통계적으로 명확한 것은 아니다. 가해자에 대한 정밀한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애틀랜타 총기 난사범은 21세 백인 남성이었고,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휠체어에 앉은 84세 노인을 양발 차기로 넘어뜨린 23세 남성은 히스패닉이었다. 추측하건대 가해자 통계가 없는 것은 그게 다인종국가인 미국의 사회통합에 이롭기는커녕 해가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일 것이다.

 

약자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보고 확대해석하는 것 역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강자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21.04.16 09:36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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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이달 초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민등록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2019년(5184만9861명)에 비해 2만838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인구 감소는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인구증가율 마이너스, 원인은 무엇인가.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는 우선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성장기인 1970년대 일상적으로 접했던 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독려 구호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심각한 저출산 기조가 슬슬 문제시되더니 급기야 ‘인구 절벽’까지 운위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0년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사진은 4일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뉴시스

 

그러다 보니 이를 우울한 뉴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일부 지방에서 제기하는 농촌 소멸론을 넘어, 대한민국 소멸까지 우려된다고 극언하기도 한다.

10년 빨라진 인구 데드크로스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인구 데드크로스(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지는 현상)가 처음 발생한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해 출생자 수는 27만581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사망자는 30만7764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자료를 검색하다 우리나라 인구 감소가 현실화하는 시기가 2031년부터일 것이라는 전망과 마주쳤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이보다 10년이나 빨리 왔다. 데드크로스가 이처럼 빨리 온 것은 출산율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합계 출산율이다. 이미 2015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금은 어떨까. 지난해 2·3분기 0.84명으로 다시 떨어졌다. 초저출산이다. 여기서 멈출까. 0.84명은 저혼인·저출산이라는 코로나19 충격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일부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명대로 더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독신세'  만든 로마황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생산과 소비가 위축돼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성장률은 하락한다. 재정수입이 줄면서 공적연금은 물론 보건·의료 복지 재원이 고갈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기업투자도 감소한다. 납세와 국방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인구가 영토, 자원과 함께 국력의 기본 요소란 인식은 역사가 길다.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는 로마에 출산율 저하 현상이 나타나자 미혼여성들에게 ‘독신세’를 부과하는 등 출산장려책을 썼다. 국력의 쇠퇴를 우려한 것이다. 이 제도는 300년간 계속되면서 출산율 유지에 공헌했고 로마 인구의 안정적 성장은 ‘팍스 로마나’의 기초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노무현정부 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4차까지 5년 주기로 기본계획을 내놓았는데 골자는 아동수당·영아수당 신설을 통해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15년간 정부가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은 225조3000억 원에 이른다. 2006년 2조1000억 원에서 매년 늘어 2020년에는 40조2000억 원이나 됐다. 이렇게 돈을 쏟아붓고도 결국 인구감소를 막지 못했고 합계 출산율은 0명대까지 떨어졌다. 목표와는 거꾸로 된 결과가 나온 것은 어째서인가.  

"저출산을 아젠다로 삼는 정치인  없어" 

명목상 예산은 늘었지만 출산과 돌봄 등 저출산과 관련한 직접예산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고용이나 주거 등 간접지원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직접예산을 비교하면 OECD 회원국 평균이 국내총생산(GDP)의 2.4%인데 비해 우리는 2019년 1.48%밖에 안 된다”고 저출산고령사회위 관계자는 말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여대 정재훈 교수(사회복지학)는 2017년 “저출산 기본계획 시행 10여 년 간 예산 규모 100조의 절반은 정부 일반예산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정 교수는 또 저출산고령사회위 홈페이지에 실린 칼럼에서 “최근 저출산을 자신의 아젠다로 삼으려는 비중 있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당장 효과가 없는 주제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큰 정치적 부담이 된다고 풀이했다. 2021.01.18 13:10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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