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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미국이 개최한 역설

꽤 오래전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일등서기관 L을 만나 술 마시고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러시아의 마피아 등 범죄 급증이 심각한 문제 아니냐고 물었다.그가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걱정된다... 하지만 미국만큼 심각한 건 아니다. 미국을 봐라.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벌어지고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 미국 아닌 나라,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 브레이비크가 총기를 난사해 모두 77명을 숨지게 한 테러사건(2011년)도 발생하긴 했지만 학교 술집 식당 등에서 총기 사건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미국에 비하면 약과라 할 수 있다.

▲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 연설을 하고 있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뿐 아니다. 지난해엔 유명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질식 사망한 사건이다. 흑인·아시아계 차별로 인한 유사 사건도 끊임없이 빈발하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지난 9~10일(현지시간) 이틀간 개최했다. 이 정상회의는 세계적으로 도전받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권위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연대를 강화하겠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소집한 화상회의다.

 

111개 나라가 초청된 이 회의 개회사에서 바이든은 “민주주의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하고,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하고, 그것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이 이 회의를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 이른바 자격론이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은 폭력범죄의 ‘천국’이며 사법기관·경찰의 인권침해가 심각한 나라다. 그런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인권상황을 나무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신장 지역 인권 탄압을 이유로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정부 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 방침을 이번 정상회의 개막 직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 역시 초청에서 배제됐다.

 

초청 대상에서 빠진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한 건 당연했다. 친강(秦剛) 주미 중국 대사와 아나톨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미국 잡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이념적 대결만 부추길 것”이라면서 미국은 국제사회 ‘편 가르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가짜”란 비난도 나왔다. 중국 외교부 러위청(樂玉成) 부부장은 지난 2일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는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자국의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고, 국민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며 “개별 국가가 민주주의 지도자를 자처하며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소집하고, 세계 각국에 민주와 비민주라는 꼬리표를 붙인 뒤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것(미국)은 가짜 민주주의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언술에는 아전인수적 측면도 있다. 특히 ‘자국의 토양에 뿌리내리고’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 제정 당위성의 근거로 내건 ‘한국적 민주주의’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자격론을 제기하는 부분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 판관’을 자처한 전력이 이전에도 있다. 9·11 테러 4년 뒤인 2005년 미국 의회는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 of 2005)을 제정했다. 내용은 전세계 국가들의 민주화 등급을 매기고 비민주적 국가들을 ‘평화적 수단’에 의해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위해 비정부기구와 개인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다는 것 등이다. 이 법의 정신은 전세계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집권 2기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 목표와 일치했다.

 

어떤 연유로 미국은 이른바 ‘민주주의의 세계화’를 법으로 규율하겠다는 방약무인한 발상에 도달한 것일까. 짐작하건대 그것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라는 전통적 사명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의 현대적 발로가 민주주의 증진법이며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란 생각이다.

 

미국에선 19세기 중반에 ‘신의 원칙 실현이 미국의 명백한 숙명’이란 일종의 선민의식이 형성됐다. 이게 오늘에 와서는 미국 이념·제도의 세계적 확산에 대한 종교적 확신으로 변용된 것이다. 명백한 운명은 ‘고 웨스트(Go West)’란 구호로 상징됐는데 이것이 해외로까지 뻗어나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미국이 진정 평화와 인권을 수호하는 민주국가인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가면 갈수록 부정적이다. 민주주의는 똑같지 않다. 이 전제만으로도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세계화’는 허구적이다. 2021.12.14 12:45 

  • Favicon of http://kimchulun.khan.kr 김철웅 2021.12.16 07:11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칼럼이 포린 폴리시에 실렸는데 옮길 수가 없네요... (12/15 프레시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