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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민주주의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편협한 인식  

※이 칼럼은 한 인터넷매체에 기고했으나 나가지 않은 것을 올립니다. 

 

김어준은 책 ‘닥치고 정치(2011)’에서 나중에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 박근혜의 정신세계를 정리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친박연대) 모아놓고 박근혜의 철학이 뭔지 구체적으로 쓰라고 시험 쳐봐. 전원이 한 페이지도 못 넘긴다. 쓸 게 없어.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며, 국가는 번영해야 하고, 외세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딱 세 줄 쓰면 끝이야.” 

 

사람들은 박근혜를 긴 세월 알고 살아왔지만 그가 정작 어떤 정치인인지는 아는 게 없었다. 인지도가 사실상 100%인 현역 정치인이 이렇다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의 정치철학이나 논리는 상당 부분 미지의 영역이다. 이건 달리 말하면 정답이 항상 나와 있다는 뜻과 통한다. 그 정신세계가 사실상 최순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는 점은 훗날 밝혀졌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예측불허와 예측가능과의 관계도 그렇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행보는 박근혜 당시 후보와 닮은 점이 있는 듯하다. 윤 후보는 지난 25일 방영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TV토론을 벌이는 것에 대해 “정책 토론을 많이 하는 게 별로 그렇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토론을 하면 서로 공격과 방어를 하게 되고 자기 생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라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걸 시청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경선에서 16번 했지만, 그 토론 누가 많이 보셨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 후보를 포함한 상대 진영에선 즉각 반박 입장이 나왔는데, 그중 민주당 선대위 강선우 대변인이 한 말이 와 닿는다. 그는 페이스북에 “싸움을 핑계로 토론 회피의 명분으로 삼았으나, 결국 윤 후보는 자질 검증, 도덕성 검증, 정책 검증이 무섭다고 자인한 것”이라며 “국민의힘 경선 주자들에 대한 예의도 저버린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오는 3월 9일 대선에서 맞불을 두 사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한마디로 ‘검증이 무서워서’ 윤 후보가 TV토론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전북대생들과 만났을 때 윤 후보가 한 발언을 예로 들겠다. 윤 후보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항쟁”이라며 “저는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같은 사회적 민주주의도 정확한 자유민주주의”라며 “개인이 존중되고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제한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딱 쥐어주고, 국가보다 개인이 먼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편협한 이해의 소산이라고 본다. 민주주의 국가란 사실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 독일을 보자. 독일 사회민주당(SPD)은 이 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긴 정당이다(1875년 창당).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6년 집권하고 물러난 뒤 울라프 숄츠가 이달 초 총리에 취임해 집권여당이 됐다. 당명대로 사회민주주의를 행동원칙으로 민주사회주의를 달성하는 것을 강령으로 한다. 나무위키에 보면 세계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40개나 된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윤 후보가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질문은 꼬리를 문다. 그렇게 유권해석을 내린 사람·기관은 누군가. 또 유럽 사회민주주의도 정확한 자유민주주의란 주장은 어디에 근거한 새로운 학설인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민주공화국 앞에 자유란 말이 안 붙어있다. 왜 잘 있는 민주주의에 자유를 갖다 붙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인가.  

 

MB 집권 시절 국회 국감장에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의원 하라.” 그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란 용어는 소나 개나 아무나 써먹는 말이다. 북한도 자칭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지 않나. 자유민주주의만이 살 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려는가.” 이 질문은 새 버전으로 갱신되곤 하더니 급기야 ‘유럽도 자유민주주의’란 새 논리를 개발한 윤 후보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우리는 유신체제 정당화를 위해 민주주의에 ‘한국적’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인 역사적 경험이 있다. 민주주의의 발현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민주주의에 자유·인민·사회 등 수식어를 덕지덕지 갖다 붙이려는 시도들은 경계하는 게 좋다. 사회민주주의랑 자유민주주의랑 같다고? 무슨 신학설이냐. 말이냐 막걸리냐.  2012.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