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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대통령 ‘존영’ 표현, 어디가 어때서

 지난주 새누리당 대구시당이 대통령 사진을 ‘존영(尊影)’이라는 옛날식 높임말로 불렀다는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권위주의 시대의 잔상이니, 시대착오적이라느니 해가며 말이다. 요며칠 살펴보니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비판 일색인데,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분명히 이런 일방적 비판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고 믿는 바,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분노의 필을 든다.


 첫째, 우선 대통령 존영 반납을 요구한 대구시당부터 살펴보자. 당 관계자는 “대통령 사진은 엄연히 정당 자산이며, 탈당하면 해당 자산을 정당에 반납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아, 이 공사 구분의 엄정함이여. 비록 공무원은 아니지만 집권 공당의 당직자란 점에서 그의 판단은 공무를 다루는 모든 사람이 귀감으로 삼을 일이지 결코 조롱거리가 될 수 없다.


 대구시당은 덤으로 웃음거리까지 선사했다. 경제도 어렵고 끔찍한 사건들도 반발하고 참으로 웃을 일 찾기 힘든 게 요즘 세상살이다. 한데 이들은 모처럼 즐거움을 안겨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관훈클럽에서 그러지 않았나. “그동안 머리 아픈 일이 많이 있었는데 아주 좋은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기분 들었다”고.



유승민 '새누리당을 떠납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지난 23일 오후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새누리당 탈당 및 20대 총선 대구동구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도착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기자회견장으로 사용된 회의실앞에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
ⓒ 권우성


 


 둘째, 본격적으로 존안이란 용어를 사용한 문제로 들어가 보자. 나는 이런 격조있는 말을 쓴 것이야말로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또 우리에겐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소중한 덕목이 있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이라 하여 임금과 신하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음을 가르쳤고, 오륜 역시 군신유의(君臣有義·왕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중시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가르침은 켸켸묵은 것으로 치부됐다. 가령 철학자 탁석산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책에서 오늘의 한국이 역동적인 이유는 조선의 전통과 단절한 데 있다며 “철학, 종교, 정치 면에서 조선과의 단절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한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건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삼강오륜은 봉건시대의 덕목에 불과한 게 절대 아니며 오늘날에도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군신유의의 경우 임금이 아니라 대통령을 향한 존숭으로 해석하면 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데도 ‘존영’ 표현을 계기로 저 종북좌파들이 언죽번죽 준동하는 꼴을 보라. 진 모라는 교수는 “존영이라… 어휴, 남조선이나 북조선이나… 조선은 하나다”라고 비아냥대는 글을 올렸다. 조 모 교수는 “존영 대신 어진(御眞)이라고 하지 그랬느냐? 도를 넘는 충성경쟁, 참으로 역겹다”고 비판했다. 종북좌파들은 틈만 나면 남과 북의 동질성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남의 ‘존영’ 사용을 북의 ‘최고 존엄’과 비교하는 망동을 일삼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대목에서 남과 북이 겹쳐보이기는 한다.

 

   개인적으로 이는 유구한 왕조경험에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유전자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우리처럼 긴 왕조의 경험은 흔치 않다. 고려 34대 475년, 조선 27대 519년 등 2개 왕조만 해도 도합 천년이다. 그래선지 현대의 대통령을 과거의 왕이나 나랏님과 동일시하는 사고방식도 낯설지 않다. 왜 얼마전 새누리당내 공천파동도 ‘옥새투쟁’이라고들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역사적 경험을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의 전통적 윤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아름다운 유교적 전통을 내면화해야 한다. 종북좌파들의 발호 탓에 대통령을 조롱하는 풍토가 근래에 극에 달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 그를 쥐에 빗대 모욕한 사건이 지금도 생생하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가 택할 길은 권위에 대한 저항보다는 순종이다. 반대보다는 지지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주창한 바 총화단결만 하면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막말로 탈권위주의나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이참에 본인은 요즘 사용이 뜸해진 예스럽고 격조있는 말들도 부활시킬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그것은 ‘(대통령의) 진노’나 ‘(금일봉) 하사’를 비롯해 ‘각하’ ‘가신’ ‘읍소’ ‘진언’ 같은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