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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다른 인간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재미교포 진모씨(32·여)는 2014년 취업비자로 한국에 왔다. 영어 강사로 일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어학원 측은 고급반 수업을 맡기지 않았다. 그는 “학원이 수업 경력이나 강사의 학력수준에 앞서 먼저 ‘백인’인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학원 영어강사 구인 광고엔 “백인들만(Whites Only)”이란 조건이 붙은 것도 있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백인우월주의의 모습이다. 한국 경제구조에서 최상층을 차지하는 외국인은 거의 백인 전문직업인들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백인우월주의란 인종차별이 편향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네팔,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에서 온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픽사베이

지난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었다. 16일 세계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였다. 이들은 국내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을 넘긴 현실에서 “한국사회 내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권리는 밑바닥 수준”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참가자들은 “억압과 착취는 계속되고 있다”며 “단 한 차례도 이주민을 향해 ‘존중’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수원시 순대공장 노동자인 네팔인 A씨(25)는 일을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해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낸다. 그사이 “휴식시간”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난민 인정을 받기 전까지 취업 허가를 얻어 일자리를 구하도록 하고 있는데 구직 자체가 매우 어렵다. 한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는 “브로커를 통해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일시적 체류연장을 3개월에 한 번씩 받아야 해 구직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난민은 국내 이주노동자 가운데서도 특수한 상황의 외국인이다. 삶이 가장 불안한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국내 난민은 지난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무비자 입국한 예멘인들이다. 그런데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신청한 예멘인은 총 484명이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2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두 사람은 언론인 출신으로 후티 반군에 비판적 기자를 썼다가 납치·살해 협박을 당했고, 앞으로도 박해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됐다. 41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1년)를 받았다. 56명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14명은 난민 신청을 철회하거나 출국 후 재입국하지 않아 심사가 종료됐다.

 

법무부는 “내전이나 강제징집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은 난민협약과 난민법상 5대 박해 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에 해당되지 않아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1992년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한 뒤 작년 상반기까지 모두 4만2009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2만361명에 대한 심사를 끝냈는데, 이 가운데 839명이 인정받았다. 난민 인정률은 4.1%이다. 유엔난민기구가 밝힌 선진국 평균 난민 인정률은 38% 선이다.

 

한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13년 1574명에서 2017년 9942명, 2018년 1만 명을 넘었다. 인권단체들은 난민 인정률이 너무 낮다고 말한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성명을 내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심사 결과 단순 불인정된 56명의 신변과 인도적 체류자들이 처할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난민 보호정책을 국제 인권기준에 부합하도록 재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낮은 난민 인정률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지적됐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위원회는 한국의 인종차별 철폐협약 이행에 관해 심의했다. 한국에 대한 심의는 6년만의 일이었는데, 위원회는 한국의 협약 이행 상황에 큰 진전이 없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아직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법을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극도로 낮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발표했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는 최근 ‘시사인’ 인터뷰에서 기자가 “난민을 종교나 인종으로 묶어서 보지 말고, 한 명 한 명 사람으로 보자고 자주 강조하지요?”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일부 가짜뉴스처럼 ‘난민은 성폭행범’ ‘난민 허용은 이슬람화’ 이런 식으로 싸잡아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예멘 난민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무슬림 15만명 이상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고 하거든요. 그때 무슬림 성폭행 사건이 그렇게 많았나요?”

 

한나 아렌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고양이한테 다른 고양이는 항상 같은 고양이인데,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 배제하고 차별하고 타자화하는 데 길든 인간 속성을 잘 포착한 말 같다.   2019.01.18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