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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남북철도 연결을 성사시켜야 하는 이유

회상 한 토막. 모스크바대에서 연수중이던 필자가 흑해 연안 크림반도를 여행할 때 일이다. 목적지 심페로폴까지는 기차로 27시간 걸렸다. 고작 5~6시간밖에 기차를 타본 경험이 없던 내게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쿠페(4인용 침대칸)에 동승한 러시아인들과 보드카를 마시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50대 농부인 사샤가 흔들어 깨운다. “미스터 김, 거의 다 왔어요.”

 

반색을 하며 “몇 분 남았냐”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3~4시간쯤”이란 것이었다. 놀리려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함께 탄 동양인이 지루해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조금만 참으란 뜻으로 한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기차로 서너 시간은 그의 개념으로는 ‘거의 다 온’ 거리였다. 왜 아니겠는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오려면 6박7일 동안 9288㎞를 달려야 한다. 사샤의 거리 개념은 그런 나라 사람다운 스케일이었다.

 

그 뒤로 러시아 특파원을 하며 그곳 사람들과 거리·시간 개념이 현격히 달라 당황한 적이 적지 않다. 그래서 국토가 사고의 크기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괜히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6박7일 9288

 

TSR 쿠페에서 맥주 한 캔

 

 

지난 6일 남북 철도 공동조사단이 북한 신의주-단둥 국경지역 조중친선다리를 조사하

고 있다. ⓒ통일부

이십 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오른 건 목하 남북한 철도 연결을 위한 대장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남북은 오는 26일 북측 판문역에서 철도 연결 착공식을 열기로 했다. 이에 앞서 남북은 함께 열차를 타고 경의선 개성~신의주 약 400㎞ 구간에서 공동조사를 마쳤고,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약 800㎞ 구간에서 궤도·노반·교량·터널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좀 성급하지만 유쾌한 상상도 가능하다. 내친 김에 남북한 철도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까지 해볼 수는 없나.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 보자. 우리가 탄 기차는 경의선과 연결된 북측의 평부선(평양∼개성), 그리고 평라선(평양∼나진)을 거쳐 TSR의 궤도에 오른다. 기차가 울란우데에 다다르자 전세계 담수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호수 바이칼이 웅자를 드러낸다. 바이칼 생선 오물리 튀김에 보드카 한 잔. 다시 끝없이 펼쳐지는 타이가, 그리고 자작나무 숲…. 모스크바에서 철도는 다시 유럽의 구석구석으로 연계된다.

 

물론 이런 것이 현실화하기까지는 허다한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남북철도 연결만 해도 착공식이 열린다고 해서 바로 공사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비핵화 진전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노후화한 북측 철도도 문제다. 경의선 공동조사에 참여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움직인 거리와 시간을 분석했을 때 평균 시속은 약 20~60㎞ 정도”라고 말했다. 동해안 구간은 이보다 사정이 더 열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 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라고 말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TSR와 연결할 경우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북한 철도는 우리와 같은 표준궤(1435㎜)이고 러시아는 광궤(1524㎜)를 쓴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두만강역과 핫산역에 환승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남측 기차가 북한을 지나 러시아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국경에서 환승이나 환적, 또는 열차바퀴 교환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런 과정 없이 정상운행이 가능한 ‘궤간가변대차 기술’을 개발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은 역사가 꽤 길다. 1984년 남북경제회담에서 철도연결이 처음 공식 거론된 이래 논의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직격탄을 맞았다. 그 점에서 지난달 30일 북녘을 향해 출발한 남북철도 공동조사단 열차는 큰 의미가 있었다. 남측 도라산역과 북측 판문역을 1년 동안 주 5회 오가던 화물열차가 2008년 11월 28일 운행을 중단한 지 꼭 10년만의 일이었다.

 

부정적 시각도 있다. 대북 퍼주기 논란은 충분히 가연성 높은 요소다. 경제적 효과 부분도 논란이 있다. 가령 부산에서 수출품을 싣고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가는 것보다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로 가서 TSR를 이용하는 것이 물류비가 덜 든다는 것이다. 관광의 경우 좁은 기차에서 어떻게 일주일이나 버티느냐며, 환상에 빠지지 말고 모든 문제를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리 있는 말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남북철도 연결과 ‘철의 실크로드’ 성사가 한반도의 전쟁 공포를 날려버리는 큰 소용돌이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아울러 우리의 사고가 한반도란 좁은 틀을 벗어나 대륙풍을 호흡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2018.12.17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