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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홍위병

40년 전인 1966년 5월16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5·16 통지’를 채택했다. 반혁명 수정주의를 몰아내자는 문화대혁명이 불붙은 것이다. 이튿날 인민일보에는 마오쩌둥의 선언이 실렸다.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 있는 적들을 찾아내 차단하라!” ‘숨어 있는 적’이란 ‘자본가들과 그의 개들’을 뜻했다.
 
중국은 지난 81년 10년 동안 지속된 문화대혁명을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준 문혁은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아픈 기억이다. 전국적으로 1천1백만명에 달한 홍위병에 몸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홍위병-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은 열두살에 홍위병에 가담한 ‘홍위병 세대’의 자전적 기록이다. 지금은 미국 대학 교수가 된 션판(52)은 이 글에서 자신이 철모르고 저질렀던 잘못들을 참회한다. 그들에게 마오의 붉은 책이 아니면 동화책도 홍루몽도 불태워져야 할 ‘봉건 잔재’일 뿐이었다. 늙은 수학 선생님과 얼굴에 붉은 페인트칠을 한 여교장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끌려다니는 것도 재밋거리였을 뿐이었다.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천카이거(陳凱歌·54) 감독도 홍위병 출신이다. 그는 베이징 4중 재학중인 14세 때 홍위병이 돼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열렬히 비판한다. 부모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마오는 전직 홍위병 출신의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나자 이들을 산간벽지로 보내 버린다. 천감독도 재교육을 받으러 떠난다. 마오는 결국 권력투쟁을 위해 홍위병을 앞잡이로 사용한 뒤 대부분 용도폐기한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에 ‘文化大革命(문화대혁명)’을 치면 “당신의 검색어는 관련 법규를 위반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뜬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문혁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문혁이 중국을 20년 후퇴시켰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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