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공산당과 자본가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은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등의 끊임없는 투쟁을 소개하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말로 글을 마친다. 단결의 목적은 물론 부르주아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출발점은 노동자와 병사 대표로 구성된 ‘노병(勞兵) 소비에트(평의회)’였다. 중노동과 체임에 시달리던 노동자와 급여를 제 때 받지 못한 병사들로부터 혁명의 불길이 댕겨진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서기장 시절인 1990년 3월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규정한 헌법 제6조가 삭제됨으로써 소련 공산당은 종말을 고했다. 이후 러시아 공산당은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중국 공산당은 2002년 11월 개최된 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3개 대표론’을 채택했다. 이는 노동자·농민의 적(敵)으로 치부됐던 자본가의 입당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발표한 이 이론은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자본가), 선진문화 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농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본가를 영입한다는 획기적 조치와 함께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선언’의 주요 부분을 당장(黨章·당 헌법)에서 뺐다. 자본가와 지식인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하게 된다’며 계급투쟁을 강조한 것은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 사회주의 노선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1930년 창당한 베트남 공산당이 76년 만에 자본가의 입당과 당원의 기업활동을 허용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 공산당도 ‘노동자와 농민의 당’ 지위를 포기하고 중국식 공산당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산당 독재국가 가운데 ‘정통성’을 고집하는 나라는 북한, 쿠바 정도뿐이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도쿄재판 60주년  (0) 2006.05.02
[여적] 스킨헤드  (0) 2006.04.26
[여적] 트루먼과 맥아더  (0) 2006.04.17
[여적] 시베리아 호랑이  (0) 2006.04.09
[여적] 유다 복음  (0) 200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