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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충무로, 영등포, 혜화동, 연안부두

 종로, 광화문, 영등포, 을지로, 마포, 삼각지, 혜화동…. 노래엔 여러 동네와 장소 이름이 나온다. 노래에 나오는 바람에 더 유명해진 동네도 있다. 그렇지만 노래와 관계가 없는 동네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노래와 동네, 음악과 장소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장소는 어떻게 노래를 낳으며, 또 노래는 어떻게 장소를 담는가.【주1】이건 그 시절의 사회경제적 흐름과 변화를 정직하게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란 점에서 꽤 흥미로운 주제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중략)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라라라…
                                                                <혜화동> 가사

 

 

 

                                        혜화동 골목길, 2007

 

 

 노래 <혜화동>(1988·김창기 작사 작곡)이다.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멀리 떠난다며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고 한다. 가서 보니 그렇게 넓었던 골목은 좁아졌다. 어릴 적 함께 꿈꾸었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고 다짐한다. 그게 먼 훗날일지라도…. 지방 출신들이 향우회 하듯 이들은 ‘고향 혜화동’에서 만났다.


 서울의 혜화동은 고유명사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고향으로 남아있는 추상적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창기는 “강북에서 어린 시절 보내고, 여의도나 강남, 잠실 같은 아파트로 이사 갔던 세대들에게는 혜화동 같은 강북 동네가 고향”이라고 말한다.【주2】노래 가사에 구태여 혜화동을 적시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의 경우도 서대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강남으로 이사했는데, 역시 서대문이 고향이란 정서는 지금도 그대로이다. 물론 그곳도 많이 변했지만. 강북 서울은 여전히 그리움의 공간, 푸근한 공간으로 노래에서 추억된다.

 

 에피톤 프로젝트와 한희정이 부른 <이화동>(2010·차세정 작사 작곡)도 ‘그대와 함께 걷던 이화동 골목길’을 그리워한다. 이화동도 혜화동처럼 서울 종로 옛 도심의 유서 깊은 동네란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세련되면서 운치 있는 이미지를 지켜간다.

 

 우리 두 손 마주잡고 걷던 서울 하늘 동네/ 좁은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야
 그늘 곁에 그림들은 다시 웃어 보여줬고/ 하늘 가까이 오르니 그대 모습이 떠올라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 해 오월 햇살/ 푸르게 빛나던 나뭇잎까지
 혹시 잊어버렸었니/ 우리 함께 했던 날들 어떻게 잊겠니…(하략)
                                <이화동> 가사

 

 루시드 폴의 <삼청동>(2005·루시드 폴 작사 작곡) 역시, 삼청동을 쉴 곳 잃어 지칠 때 아무 말 없이 걸어갈 수 있는 곳, 바람이 지나가 버린 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곳, 소란함 없이 가만히 생각하고 관조할 수 있는 곳으로 느끼고 이를 노래에 담았다.【주3】

 

 난 낯설은 의자에 앉아서/ 난 낯설은 거리를 보면서
 난 낯설은 소식을 듣고서/ 난 낯설은 생각을 하면서
 난 낯설은 바람이 지나가 버린 곳에 살아
 조금도 변하지는 않았어/ 아직도 난
 그대가 보내 준 마음 소식 듣고 싶어/ 이런 내 맘 아는지
 때론 쉴 곳을 잃어가도/ 넘어질 듯이 지쳐가도
 아무 말 없이 걸어가리/ 그대 있는 곳으로…(하략)
                       <삼청동> 가사

 

 우리 가요는 초창기부터 지명과 인연이 깊다. <목포의 눈물>(1935·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1938·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같은 노래가 대표적이다. 이들 노래에서 지명은 곧바로 열쇳말이 된다. 목포 아닌 다른 항구의 눈물이어서는 제 맛이 안 난다. 그 애달픈 정조(情調)가 전달되지 않는다. 두만강도 다른 강이면 노래의 맛을 못 살린다. 이런 선례가 있어선지 노래에는 끊임없이 지명들이 명멸해왔다.


 <굳세어라 금순아>(1953·강사랑 작사, 박춘석 작곡, 현인 노래)엔 흥남부두와 국제시장, 영도다리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엔 한 많은 미아리 고개가 나온다. <대전 블루스>(1959·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안정애 노래)엔 대전발 영시 오십분 기차가 나온다. <용두산 에레지>(1966·최치수 작사, 고봉산 작곡, 고봉산 노래)는 부산, <연안부두>(1979·조운파 작사, 안치행 작곡, 김트리오 노래)는 인천이 배경이다. 인천 노래론 <이별의 인천항>(1954·전오승 작사 작곡, 박경원 노래)도 애창된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 다오 말해 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 속에 가물 가물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 선 이 마음을 달래 주는데
 …(하략)                     <연안부두> 가사

 

 

                     연안부두

 

 

 이 노래는 삼미 슈퍼스타스부터 현 SK와이번스까지 프로야구 인천지역 연고팀을 위한 부동의 응원가로 30년 넘게 불리고 있다. 작사가는 이런 술회를 한다. “내가 원래 충청도 출신이긴 한데, 학생 시절에 전학을 와서 인천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종종 연안부두에 앉아서 바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시절에는 인천 연안부두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그래서 고깃배나 섬을 오가는 조그만 배들이 많이 드나들었거든요. 물론 간혹 외국을 오가는 배들도 있었고. 그래서 거기 앉아 있다 보면 이별하는 사람, 감격적으로 해후하는 사람, 망망대해를 그저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또 한 쪽에는 생선 파는 사람, 손님 소매를 끌어당기는 작부, 그런 모습들을 항상 보곤 했죠. 그런 다양한 삶의 애환, 로맨스, 절망, 눈물과 기쁨, 그런 것들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가 나중에 노래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한 번 써보게 된 것이죠.”【주4】

 

 지명이 들어가는 가사 가운데 도시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편이다. 조용필이 부른 <서울 서울 서울>(1988·양인자 작사, 조용필 작곡),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1982·김중순 작사 작곡)를 비롯해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1989·김현철 작사 작곡), 프로젝트그룹 창고의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께>(1997·김창기 작사 작곡),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1988·최성원 작사 작곡) 등이 있다. 김용만이 노래한 <남원의 애수>(1960·김부해 작사, 김화영 작곡)도 있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2012·장범준 작사 작곡)는 여수를 청춘 여행지로 떠오르게 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우~
 떠나요 둘이서 힘들 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메가 살고 있는 곳
                             <제주도의 푸른 밤> 가사

 

 그러나 도시의 아래 단위, 가령 동네로 내려가면 지방 지명은 급감한다. 앞서 소개한 <혜화동> <이화동> <삼청동>을 비롯해 강남의 압구정동 등 동네들이 등장하는 노래들은 모두 서울이 배경이다. 그야말로 ‘모든 길이 서울로 통하는’ 서울 집중현상이 노래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들어 서울에 불기 시작한 ‘강남 바람’은 가요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9년 나온 혜은이의 <제3한강교>(길옥윤 작사 작곡)는 노래 지명이 강남으로 진출하는데 문자 그대로 ‘다리(橋)’ 역할을 했다. 제3한강교는 강남 개발과 함께 1969년 건설된 것으로 한강에 세번째로 만든 다리라고 해서 이런 ‘촌스런’ 이름으로 불리다가, 1984년 한남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노래를 신호탄으로 강남 노래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비 내리는 영동교>(1985·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주현미 노래), <신사동 그 사람>(1988·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주현미 노래), <사랑의 거리>(1989·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문희옥 노래) 등이다.


 그 사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신흥 부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1982·윤수일 작사 작곡)가 뜬 것도 그 즈음이었다.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목으로 쓴 것이 당시로는 생경하면서도 신선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하략)
                                    <아파트> 가사

 

 

                         아파트

 

 윤수일은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로부터 좋아했던 여성이 갑자기 이민 간 소식을 듣고 그녀가 살던 아파트 앞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이 쓸쓸한 얘기를 재빨리 휴지에 받아써서 5분 만에 노래의 골격을 완성했다.【주5】노래에 강남 아파트란 말은 없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 갈대숲을 지나’ 찾아간 곳이 당시 본격 개발이 진행되던 강남인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서울 강남구의 ‘대중가요’ 항목에 이런 설명을 올려놓았다.

 

 1989년 ‘남서울 영동’을 예찬하는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는 이제 대중가요 노랫말의 주무대가 과거의 종로, 무교동, 명동이 아니라 엄연히 신흥지인 남서울 영동으로 바뀌었음을 선포하는 득의양양한 강남찬가로, 그것은 서울 도심이 북에서 남으로 완전히 이동했음에 방점을 찍는 것을 의미했다.
 1990년대 압구정동은 소위 오렌지족, 야타족으로 불리던 졸부 2세들이 흥청거리는 동네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1993년 신성우의 <Rock‘n Roll+압구정동, 공주병>, 2000년 DJ DOC의 <부익부 빈익빈>, 2001년 거리의 시인들의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시간들> 등이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함께 했다. 대중가요에서 압구정동이 가치 평가를 배제한 일상의 공간으로 안착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2001년 양동근의 <구리뱅뱅>이나 2002년 브라운아이즈의 <비오는 압구정>은 기존의 부정적 담론을 극복하고, 압구정동을 비롯한 강남을 차가 막혀 짜증내고 사람을 기다리다가 슬퍼하기도 하는 사람 사는 공간으로 그려냈다. 2000년대 성인으로 진입한 강남 출신 젊은 가수들에게 이제 압구정동은 개인적 감성의 공간일 뿐이라는 평이 이러한 담론의 변화를 수긍케 한다.【주6】

 

 아파트는 우리 주거 형태의 대세가 된지 오래다. 어디 사느냐와 어느 아파트 사느냐가 같은 질문이 되다시피 했다. 통계청이 5년마다 하는 조사에서 2010년 아파트 거주 가구(47.1%)가 단독주택 가구(39.6%)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나머지는 연립·다세대 주택이 10.1% 등이었다. 1980년 조사 때는 아파트가 겨우 4.9%, 단독주택이 89.2%나 됐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주7】


 한국이 이렇게 아파트에 열광하는 나라가 된 것에 흥미를 가진 발레리 줄레조란 프랑스 지리학자가 쓴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이 있다. 서울을 처음 방문했던 1990년, 그녀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에 놀라 이를 연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1970년대 말부터 대대적으로 건설된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그 규모 면에서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책 한강변의 대규모 아파트 사진 밑에는 ‘군사기지를 연상케하는 반포의 아파트단지’란 설명이 붙었다. 저자는 책의 결론으로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고 썼다.【주8】

 

                                           줄레조 교수

 

 아파트는 이제 열광, 환상의 시기를 넘어 사회경제적 중독 단계에 온 느낌이다. 실제로 EBS는 2014년 2월 다큐프라임에서 ‘아파트 중독’이란 제목의 3부작을 만들었다. 이 프로는 고작 50여 년 만에 한국 사람들의 집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아파트를 심층 분석했다. 아파트란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목으로 쓴 윤수일의 <아파트>는 이렇게 아파트란 공간의 지배를 당하고 사는 우리 삶의 예고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파트는 공간이자 장소다. 골목길도 그렇다. 그런데 소설가 윤대녕은 공간과 장소를 구분한다. 장소는 거기 그대로 있지만, 공간은 사라지거나 변하는 게 다르다. 다시 말해 장소가 지도상의 한 지점이라면, 그에게 있어 공간이란 기억이 거주하는 집과 같다. 오래된 건물처럼 기억 또한 시간에 의해 바래지는 것이어서, “과거에 내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이란 산문집에서 그 공간에 대해 썼다. 그가 기억하는 공간은 이런 것이다. 고향집, 노래방, 바다, 도서관, 영화관, 골목길, 공중전화 부스, 여관, 목욕탕…. 특히 휴게소, 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처럼 낯선 사람들이 무심히 마주치는 곳들을 좋아한다. 그런 곳에서 삶의 우연성과 임시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주9】


 그가 글을 쓴 것은 그 공간들의 기억을 나누고 싶어서였을 거다. 나는 노래도 충분히 사라진 공간의 기억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마치 사진이 피사체가 여전히 존재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생생하게 기억을 되살리듯 말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삼각지 녹지대에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가 있다. 요절한 가수 배호(1942~1971)를 기리기 위해 그의 30주기인 2011년 세운 것이다. 노래비엔 그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1967·이인선 배상태 작사, 배상태 작곡)가 새겨져 있다. 전국 곳곳에는 가수와 노래를 기리는 수많은 노래비들이 있다. 그건 기념물을 만들어 놓고 기억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노래가 잊힐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노래엔 일종의 각인(刻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계속 기억되고 불릴 것이다. 비록 노래에 나오는 삼각지 로터리의 입체교차로는 1994년 철거됐지만.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 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터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 몰래 찾아 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돌아가는 삼각지> 가사

 

 오기택이 부른 <영등포의 밤>(1962·김방아 작사, 김부해 작곡)을 들어보자. 노래 속 지명이란 게 묘하다. 가사의 영등포가 다른 지명, 가령 을지로나 충무로, 종로여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 문맥으로 볼 때 그곳이 반드시 영등포여야 할 인과관계나 필연성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등포라야 노래 맛이 살 것 같다. 앞서 <목포의 눈물>의 목포, <눈물 젖은 두만강>의 두만강이 노래의 열쇳말이 된 것과 비슷한 경우다.

 

 궂은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불길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 어린 영등포의 밤/ 영원 속에 스쳐오는 사랑의 불길
 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 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영등포의 밤> 가사

 

 영등포는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편입됐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강 남쪽에 살던 서울 사람은 ‘서울 사람’이 아니라 ‘영등포 사람’이란 인식이 남아있었다. 그때의 영등포구는 서울의 한강 남쪽을 통틀어 일컬은 통칭이기도 했고, 서울에 딸린 한 구였기보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이라는 도시와 맞선 독립된 한 도시였기도 했다.【주10】


 

   1970년대가 되면서 영등포는 인구가 폭증해 전성기를 맞는다. 그때 한강이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이 영등포였다. 지금도 강남을 ‘영동(永東)’이라고 하는 것은 영등포의 동쪽 지역이라며 그렇게 부른 게 유래다. 영등포는 번화해 화려한 밤 문화가 형성된 곳인 반면, 강남은 채소밭이 많은 허허벌판이었던 것이다. 오기택이 매력적 저음으로 다른 곳 아닌 영등포의 밤을 노래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마지막으로 서울의 충무로, 보신각, 명동이 두루 나오는 현인의 탱고 음악 <서울야곡>(1948·유호 작사, 현인 작곡)이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 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엔/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 배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서울야곡> 가사

 

 이 곡은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고모령> 등 많은 히트곡을 가진 현인이 직접 작곡한 것이다.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일제의 징용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노래를 부르다가 우여곡절 끝에 중국 공산군(8로군)에 체포돼 수감된다. 그때 감옥에서 고통 속에서 작곡한 게 이 노래라고 한다. 1946년 간신히 귀국한 현인은 이 곡을 경향신문 문화부장이던 유호에게 내놓고 작사를 부탁했다. 유호는 1948년 어느 날 봄비 내리는 충무로 밤거리를 걷다가 이 노래의 시상이 떠올랐다고 한다.【주11】

 

 

                                                     전영

 


 이 노래는 서울의 최고 번화가였던 충무로, 명동, 보신각(종로)에 마로니에(대학로)까지 등장하는, 당시로는 멋지고 세련된 탱고 곡이었던 만큼 여러 가수들이 불렀다. 그중 압권은 전영의 리메이크(1978)이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1977·이경미 작사, 이현섭 작곡)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서정성 강한 노래를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러 깊은 울림을 전하더니 갑자기 무대를 떠났다.

 

 

【주1】CBS 라디오 특집, Sound map-음악으로 그린 서울지도 1부, ‘한강, 노래를 가르다-강남과 강북’ 한영애의 오프닝 멘트(2013년 12월 17일 방송)
【주2】같은 프로, 김창기 인터뷰
【주3】같은 프로 소개글. 주소: http://www.nocutnews.co.kr/1150830
【주4】SK와이번스 홈페이지 용틀임마당 김은식 칼럼, 야구장의 삼십년 합창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중에서(2009년 9월 14일자)
【주5】레전드 100 송(스코어, 2014) 295쪽
【주6】한국학중앙연구원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웹사이트 대중문화 항목
【주7】통계청 2010 인구주택총조사, 2011년 7월 7일 발표
【주8】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후마니타스, 2007) 18, 41, 250쪽
【주9】경향신문 2014년 6월 21일자 서평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현대문학) 정원식 기자
【주10】한국의 발견-서울(뿌리깊은나무, 1983) 한강 남쪽의 첫 서울 312쪽
【주11】정두수, 노래따라 삼천리(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3) 95쪽 ‘봄비 내리는 충무로의 낭만’ 서울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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