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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정당의 이름 

지난달 창당 14주년을 맞은 한나라당이 국내 최장수 정당으로 다시 소개되기도 했지만 다 객쩍은 소리다. 유럽, 미국 정당들의 긴 역사에 비하면 이건 실로 조족지혈이다. 영국의 보수당은 1912년에 설립됐지만 1678년 창당한 토리당 역사까지 합치면 세계 최고의 정당이다. 미국 민주당의 역사도 200년 가까이 된다. 한국 정당정치 역사가 서양에 비해 일천한 까닭에 평면적 비교는 무리지만 우리 정당이 유난히 단명인 것은 사실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모두 113개로, 평균 존속기간이 44개월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임기 4년에도 못 미친 것이다. 이 중 선거 때 반짝 생겨났다 사라진 것은 빼고 국회의원을 보유했던 정당은 40개밖에 안된다. 특정 지도자의 선거 승리나 당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 간판을 바꿔 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국의 정당은 명멸(明滅)이 숙명이다. 이런 걸 정당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니 정당정치가 제자리를 못 잡고, 당연히 정치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정당이 이합집산과 명멸을 되풀이할 때 생기는 골치아픈 문제가 작명이다. 좋은 당명을 만드는 어려움이 사람 작명 저리 가라다. 살펴보면 어지럽기까지 하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이듬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한편 새천년민주당은 민주당으로 바꿨다가 중도개혁통합신당과 합당해 중도통합민주당이 됐다가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열린우리당과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세력,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손학규가 주축이 돼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고 열린우리당과 합당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출범한 통합민주당은 다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죽산 조봉암 1898~1959
<한국 진보정치가 갈 길은 멀다. 이승만에 의해 법살당한 진보당 지도자 조봉암은 억울하게 죽으면서도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 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엊그제 민노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합친 당명을 ‘통합진보당’으로 결정하자 이 당명과 약칭을 놓고 진보신당과 마찰이 빚어졌다고 한다. 진보신당은 다른 진보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마당에 진보세력을 모두 통합한 것처럼 당명을 결정한 것은 정치도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약칭으로 ‘진보당’을 쓰겠다는 것에 대해 유사명칭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정명(正名)은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적 문제도 아닌 당명 때문에 처음부터 삐걱소리를 내는 건 보기 좋지 않다.

입력 : 2011-12-06 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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