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이오덕은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젊은 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그 편지들을 책으로 펴낸 게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2003)이다. 세상에 이렇게 빛나는 우정의 편지가 또 있을까. “이오덕: 어느 골짜기 양지바른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권정생: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살아도,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한 일간지에 연재중인 출판인 김언호씨의 회고록에 며칠 전 이런 내용이 소개됐다. 새삼 상기시키고 싶은 게 있다. 두 사람이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체국 덕분이란 사실이다. 우체국과 집배원 그리고 편지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에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져왔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주민들이 우체국 폐국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이 일상성이 흔들리고 있다. 우체국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근본 원인이 편지를 주고받는 풍토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인 건 맞다. 우리나라의 우편물량은 2018년 36억900만통으로 집계됐는데, 2010년 48억7000만통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 추세는 최근 1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1인당 우편 물량도 2010년 96.4통에서 2018년 69.6통으로 줄었다.

우체통@논객닷컴

 며칠 전 ‘폐국(弊局) 위기의 망원동 우체국 지키자’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는 4월2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이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을 예정인데 주민들이 우체국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지방우정청 관계자는 “망원동우체국은 3년 연속 우편 물량이 줄어들었다”며 “우체국은 세금이 아니라 자체 수익으로 예산을 조달한다. 최근 적자가 이어져 불가피하게 폐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신 근처에 우편취급국이 들어서게 된다. 우편취급국은 민간위탁시설로 금융업무는 하지 않고 우편물만 취급한다. 3명 이하 소규모로 운영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1989년 문을 열어 올해로 31년째 자리를 지켜온 망원동우체국에는 치킨집이 들어오기로 돼있다고 한다.

 사라지는 우체국은 망원동우체국만이 아니다. 지난달 우정사업본부는 2023년까지 전국 직영우체국 1352곳 가운데 절반가량인 677곳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서울 24곳, 경인 28곳, 부산 29곳 등 전국 171곳 우체국이 문을 닫을 계획이다. 이에 전북 군산시의회는 최근 군산시 우체국 폐국 반대건의안을 채택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전달했다. 시의회는 “공공기관인 우체국이 문을 닫는다면 열악한 지역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고 금융소외계층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 동구의회도 결의안을 통과시켜 관련 기관에 보내면서 “아직도 많은 국민이 고지서와 각종 생활 관련 정보를 우편으로 받아보고 있다. 우편은 국민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서비스”라고 지적했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전체 30곳 중 13곳 안팎이 폐국 대상이 되는데, 당장 올해부터 협재와 고산우체국이 우선 정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체국을 줄이는 명분은 경영합리화다. 우편사업은 2011년부터 계속 적자인데 지난해엔 적자폭이 2000억원을 넘었다. 이에 대한 타개책이 전국 우체국의 절반을 없앤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편이라는 보편적 공공서비스를 단순한 적자·흑자 논리로 재단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우편사업을 국가가 맡은 까닭이 있다. 이윤이 최우선 가치인 민간기업이라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오지에 홀로 사는 노인이나 외딴 섬 주민들이 우편물, 선거공보물을 받아보기 힘들다. 기업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당장 우체국 수부터 줄일 것이다. 그런 생각은 시장과 경쟁에 모든 것을 맡겨놓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발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3년 공공의료 서비스인 진주의료원을 ‘귀족노조’와 수익성 악화에 따른 적자 누적을 이유로 폐업시킨 우리의 경험과도 통한다.

 코로나19가 확산을 멈추지 않는 판국에 우체국 절반이 사라진다는 게 무슨 대수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는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고 썼다. 그 밖에도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따위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들었다. 나는 사라지는 우체국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 현란한 디지털 시대에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의 신음이 들려오는 것 같아서다. 2020.03.14 07:00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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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imchulun.khan.kr 김철웅 2020.07.13 1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신문 [지금, 여기]농촌 우체국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입력 : 2020.07.13 03:00 수정 : 2020.07.13 03:02


    첫 책을 낸 출판사는 ‘망원 우체국’ 정류장 인근이다. 망원 우체국에서 책을 보내며 가까운 이들에게 ‘우정’을 표시했다. 그날 번호대기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며 얼마나 설렜던지. 망원 우체국은 그토록 내게 좋은 추억의 장소이건만 경영효율화 정책에 따라 지난 4월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 치킨점이 들어섰다. 관공서로만 알고 있던 우체국에 적자와 흑자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정사업본부는 국가 예산을 지칭하는 일반회계가 아닌 자체 수입으로 지출하는 특별회계에 편성되어 있어 사업을 잘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조직이었던 것이다.


    우표를 붙인 손편지를 부칠 일도 거의 없고 각종 고지서도 전자문서로 받는 시대다. 그리고 소포는 사기업 택배 회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업체로서의 우체국은 현실적으로 경쟁력이 없다. 하지만 시민들이 알고 있는 우체국은 편지와 소포만 보내는 곳이 아니라 저축도 하고 공과금도 낼 수 있는 금융기관이기도 하다. ‘우체국보험’을 취급하는 창구이자, 심지어 알뜰폰 가입업무도 수행한다.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 증거로 남겨두는 ‘내용증명’ 업무도 우체국에서 한다. 게다가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는 공적마스크 판매와 재난지원금 지급 창구 역할도 했다. 그래서 우체국은 시민의 심복이자 관공서로 알고 있었다.


    농촌에서 우체국은 더없이 귀한 관공서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와는 별개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농촌에서 집배원은 행정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공과금을 내러 면 소재지까지 나갈 수 없을 때 대신 공과금을 내주기도 하고 심지어 생필품을 대신 사다주는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시골 집배원’들이다. 무엇보다 농촌 택배, 즉 소량의 신선 농산물을 택배로 보낼 때는 우체국만 받아준다. 규격에도 맞지 않고 물량이 많지 않으면 사설 택배업체에서는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농촌에서 우체국은 꼭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의 우체국 대부분은 ‘망원 우체국’보다 더 취약한 위탁 우체국인 ‘별정우체국’이다. 우체국은 직영 우체국과 민간에 운영을 맡긴 위탁 우체국으로 나뉜다. 별정우체국의 경우 전국에 725개소이고 그중 95%가 읍·면 지역에 있다. 농어촌 우체국은 대체로 별정우체국이 더 많다고 보면 맞다. 별정우체국은 청사와 시설은 민간에서 부담하고 체신 업무를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수행하며 정부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하는 형태다. 별정우체국의 업무도 직영 우체국과 같아 시민들은 우체국으로만 알고 있다.


    별정우체국은 국가 예산이 부족해 벽지까지 우편 서비스가 닿지 않던 때, 1961년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만든 제도다. 국장 지위 승계가 가능해 ‘우체국장 아들’이 다시 그 우체국의 국장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승계제도가 현대판 음서제 아니냐며 별정우체국 폐국의 명분으로 삼기도 하지만 국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이제는 그 부분만 문제 삼는 것도 구차하다. 부정비리가 있다면 사안에 따라 단죄하면 될 일이다.


    적자로 인해 고민이 많은 우정사업본부의 경영합리화 조치로 제일 먼저 손을 대려는 곳도 결국 별정우체국이다. 경영합리화 조치에는 효율화를 명분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카드를 먼저 꺼내들었다. 농촌의 별정우체국을 2인체제로 운영하라는 건데 이는 결국 폐국을 하란 뜻이다.


    이미 농촌의 별정우체국에는 두 사람만 근무하는 곳이 많아 몸이 아파도 병가를 내기조차 어렵다. 농촌은 담당 권역이 넓어서 업무 강도가 상상을 넘어서고 많은 농촌 집배원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오히려 사람이 더 필요한 곳이 농촌 우체국이다. 농촌에는 오래전에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사라졌고, 유치원과 학교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우체국 차례인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면서 도대체 어디를 믿고 돌아오라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