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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사설(社說)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날 목놓아 통곡하노라)’이란 제목의 사설이 실린 것은 1905년 11월20일로, 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사흘 만의 일이다. 지금이야 많이 느리다 하겠지만 전근대 사회치곤 꽤 속보 아니었나. 그런 만큼 사설 속 울분의 정신은 급속도로 전파돼 국민적 궐기를 촉발했다. 사장 겸 주필 위암 장지연은 사전 검열을 받지 않은 채 이 사설을 톱으로 실었다.

언론인 김호준이 쓴 <사설이란?·1998>에 따르면 황성신문과 서재필의 독립신문 등이 대사설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한국의 대사설 시대는 4·19혁명을 전후해 절정을 이루고 퇴조했다고 본다. 사설이 민중을 상대로 사자후를 토하던 ‘지사(志士)의 시대’는 가고, 차분한 목소리로 실질을 외치는 ‘전문가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파행 발행되고 있는 한국일보가 연합뉴스를 표절한 사설을 게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는 19일자에 실린 이 사설이 18일자 연합뉴스 시론 '성범죄 근절, 법률 강화만으론 부족하다'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총 21개 문장인 이 사설은 첫 두 문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문장이 연합시론의 문장을 거의 베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일 뿐 대사설 또는 ‘시일야방성대곡’의 정신은 살아있다고 본다.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좋다”고 했다. 하물며 ‘시일야방성대곡’의 전통, 역사야말로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으로 간직할 만한 것 아니던가. 그 점에서 이 시대는 사설 쓰기가 더 힘들어졌다. 치열한 비판정신을 간직하되 전문가의 식견도 발휘해야 한다.

1면이 신문의 얼굴이라면 사설은 신문의 심장이다. 특정 신문의 논조·색깔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20~30년 기자 경력의 논설위원들은 좋은 사설을 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쓸 주제를 걸러내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기에 필자들 고유의 경륜과 필력은 별개로 위원회의 공동작품이란 개념이 성립한다.

한국일보 사태가 장재구 회장의 편집국 봉쇄 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편집국 봉쇄에 항의해 사설 게재를 거부했던 논설위원들은 며칠 전 성명을 내 사측이 임명한 극소수 인력으로 제작되는 신문을 “쓰레기 종이뭉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 비대위에 따르면 본지 기사는 물론 사설까지 연합뉴스 시론 등을 표절하고 있다고 한다. 한 논설위원은 “사설을 다른 매체에서 베껴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설의 ‘존엄성’마저 속절없이 유린당하는 현실에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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