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사람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으며 산다. 텔레스크린은 오세아니아의 전체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중요 수단이다. 수신과 송신이 동시에 되며 아무리 작은 소리도 낱낱이 포착한다.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시 자신의 말과 동작이 도청,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1984>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계를 예언한 소설로 수도 없이 인용돼 왔다. 최근 미국에서 터진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 ‘프리즘’ 파문은 다시금 <1984>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만큼 소설은 촘촘한 감시망이 얽혀 있는 현대 사회를 기막히게 예견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을 운용해 온 사실은 내부고발자랄 수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29)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정보 수집 활동은) 공포스러울 정도여서 일단 망에 들면 어떤 보호장치를 해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내가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이게 어쩐지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한 말처럼 들린다. 그는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의 감시를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으나 끝내 좌절한다.
에드워드 스노든
물론 <1984>가 오늘의 세계를 못 따라가는 부분도 있다. 다양한 소통기제란 측면에서 그렇다. NSA는 개인의 인터넷 접속기록과 e메일, 파일 전송, 인터넷 메신저 대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음성통화 등까지 접근했다. 버라이즌, AT&T,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통신회사를 통해서다. 아무리 오웰이라 해도 상상력이 거기까지는 미칠 수 없었음이다.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이 프로그램은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 수단”이라며 국가기밀 유출사건에 대한 수사를 법무부에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테러 방지를 위한 약간의 사생활 침해”라고 말했다. 미국은 9·11 뒤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공식적으로는 이 용어가 ‘해외 긴급 작전’으로 바뀌기는 했다.명분없는 전쟁이란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달라졌지 실질은 그대로다. 오바마는 “100%의 안보도 없고 100%의 사생활 보장도 없다”고 했다. 대테러 정책은 근본적 수정을 기다리지만 이런 사고구조로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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