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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뷰

[월드 리뷰] 美의 인도로 가는길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은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던 인도를 배경으로 두 나라 사람들 사이의 민족적·문화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인도와 영국, 동양과 서양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의 대립을 묘파하고 이해와 관용이 화해의 길임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1984년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얼마 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다. 그의 인도 방문은 사실 포스터의 소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소설을 연상시킨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인도 방문을 앞둔 부시 대통령에게 전용기 안에서 ‘인도로 가는 길’을 읽어보라고 충고했다. 잡지는 “부시 대통령의 인도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신호, 지나친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에게 ‘인도로 가는 길’은 환상과 착각으로 짜인 미로일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NPT미가입 印과 파격 핵거래-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방문길에 인도와 ‘역사적’ 핵협정을 체결했다. 냉전 시절 대립했던 두 나라가 마침내 화해로 돌아선 것이다. 일간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지난 4일자 1면 톱기사의 제목을 ‘인-더스 시빌리제이션(IND-US CIVILIZATION)’으로 뽑았다. 들뜬 인도 분위기의 중의(重義)적 표현이었다.


 

인도는 갈망하던 미국과의 ‘핵거래’를 성사시켰다. 인도는 2014년까지 통합형인 핵시설을 민수용과 군사용으로 구분해 22개의 원자로 가운데 민수용 14개에 대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키로 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인도에 대한 30여년간의 핵동결을 풀고 핵연료와 기술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나머지 8개의 군사용 원자로를 불문에 부친다는 뜻이다. 1974년 첫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았던 인도가 ‘핵고립’에서 벗어나 사실상 핵무장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우리는 앞으로 민수용이든 군사용이든 핵시설을 만드는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의 인도에 대한 양보가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는 다음 행선지인 파키스탄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의 오랜 맹방이며 대 테러전의 핵심적 동맹인 파키스탄은 인도와 유사한 핵협정 체결을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미국의 인도를 향한 파격 행보는 나라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카네기 평화재단의 조지 페트로비치 부소장은 “이제 인도는 원하는 만큼 핵무기를 쌓을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NPT 미가입국 인도와의 핵협력은 핵무기 개발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NPT 체제의 근간을 흔들었다. 또 다른 미가입 국가인 북한과 이란에는 핵개발의 구실이 될 수 있다.

-조약근간 흔들 ‘핵 도미노’우려-

미국이 이런 이중잣대의 비판을 감수하고 인도와 핵협정을 밀어붙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시장 확대와 중국 견제라는 전략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국제담당 부회장 댄 크리스먼은 이 협정이 “인도의 에너지 부문에만 1천억달러(약 1백조원)의 새로운 사업기회를 미국 업계에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 협정이 인도의 에너지난을 줄여 경제개혁을 촉진하고 정보기술, 이동통신, 의약, 보험 등 분야에서 미국의 투자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업적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국간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다. 미국은 인도를 젖혀두고는 세계패권 유지가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무서운 기세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오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 카드로 인도만한 나라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도 카드는 러시아·중국·인도의 ‘삼각동맹’을 적절히 교란하는데도 유효하다.

이번 핵협정은 이같이 양국 이해가 맞아떨어져 성립한 ‘윈윈게임’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번 거래가 완전히 성사되려면 NPT 미가입국에 대한 핵관련 시설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 원자력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또 핵강국들이 준수하지 않는 NPT 조약을 왜 지켜야 하는지 187개 회원국들이 재검토에 나섬으로써 ‘핵 도미노’가 우려된다. 인도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