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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51번째 주(州)면 족할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번엔 또 뭘 내줬나 겁이 난다. 이 심정을 천정배 의원이 방송에서 잘 대변해 주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오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보수강경론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보주권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를 받아왔으면 무엇을 내줬을 것이냐가 궁금하고 불안하다….”
그가 불안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 전작권과 한·미FTA를 맞바꿨을 가능성이다. 그럼으로써 안보주권에 이어 건강주권까지 내줬을까봐서다. 이는 지극히 정당한 불안감이다. 재작년 촛불시위와 이명박의 반성, 그리고 2년 후의 표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경험은 이명박이 얼마든지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인물임을 가르쳐주므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표현대로 한국군이 “근력은 어른인데 두뇌는 어린아이 수준인 기형적인 신세”를 이제는 벗어나 군사주권 갖게 되나 했는데 큰 실망이다. 정말 그는 ABR, 즉 ‘노무현이 하던 것만 빼곤 뭐든지’ 신조로 움직이는 건가.
그러나 이런 불안감과 실망감보다 훨씬 본원적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작권 환수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미국 의존 집단심리다. 4년 전 재향군인회 등 227개 보수단체가 이 서명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980여만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국방부 측은 이들의 전작권 환수 연기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전작권 환수 무효화” 주장 극우

개중엔 전작권 환수를 연기한 것 정도론 만족 못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이른바 열혈 극우 인사들이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는 전환시점을 2015년으로 못박을 게 아니라 계속 연기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갑제씨도 “전작권 전환을 아예 무효화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가하는 북한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전작권과 한·미연합사는 존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힘에 대한 가없는 신뢰가 엿보인다. 

한·미 양국은 전작권 환수 연기와 FTA 양보를 통해 각각 이익을 맞바꾼 것으로 관측되지만 한국에 이 두 가지는 사실 동전의 양면 같은 문제다. 이 두 사안을 놓고 공통적인 심리가 흐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자의 안온한 품에 안기겠다는 열망’으로 규정하고 싶다.
한·미FTA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미국의 품에 안겨야 산다는 논리의 노무현 정권 작품이었다. 그나마 노무현은 전작권 환수 일정이라도 잡았는데 이명박은 기를 쓰고 미국의 따뜻한 품을 안 떠나겠다고 한다. 이제 다 컸다고 젖 뗄 때가 됐다고 타일러도 막무가내다. 이러니 FTA에서 뭔가 큰 게 넘어갔을 개연성이 높아진다. 

미국 의존의 거대한 집단심리

전작권이 미국에 있다는 것은 유사시 작전권, 즉 전쟁결정권을 우리 군대가 못 갖는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우파라면 이런 현실에 분개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엔 우리만의 독특한 우파가 있다. 저 동목옹(東木翁)으로 불리는 미국 보수파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보았으면 몹시 어리둥절해 했을 존재들이다. 이곳에선 시청앞 광장에서 ‘부시가 듣도록 하자’고 외치며 영어로 미군 철수 반대 기도를 한 목사, 시민단체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관련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따지는 총리 따위가 우파로 통한다. 

조선일보의 엊그제 사설 ‘전작권, 안보 능력 기준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는 이런 우익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었다.
“북한은 핵 무기와 세계 4위의 생화학무기, 남한 전 국토가 사정권인 유도탄 1400기, 80여기의 잠수함 전력, 18만명의 기습테러부대 등 단기전 전력에선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지난 50여년 동안 대규모 도발을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세계 최강 공군력과 대북 정보감시체제로 뒷받침하고 있는 한미연합사체제의 우월한 전술·작전 능력 때문이다….” 


이 도저한 미국 신뢰를 접하니 대만의 ‘클럽 51’ 생각이 난다. 이 클럽은 대만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자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이들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대만 섬과 펑후(澎湖) 제도 지배권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근거까지 제시하고 있다. 미국 주만 되면 안보와 번영이 한꺼번에 보장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게 화통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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