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철웅 칼럼

안상수의 색깔론과 ‘좌파로 살기’

좌우는 선악을 나누는 개념이 아니다. 사회가 왼쪽으로 간다고 나쁘고 오른쪽을 지향한다고 좋은 게 아니란 뜻이다. 그보다는 차가 달리며 좌회전하거나 우회전하는 것 정도로 비유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는 것은 교통법규 위반이 되겠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엊그제 라디오에서 분명히 얘기했다. “좌파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아는데 좌파가 나쁜 것 아니에요. 유럽 좌파 정권인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정책 노선의 차이일 뿐입니다.”

6·2 지방선거 수도권 선대위원장인 그는 이 선거를 ‘보수개혁론 대 좌파부활론’의 대결구도로 규정했다. 좌파가 나쁜 게 아니란 말은 좌파부활론이 색깔 공세가 아님을 강조하며 나온 것이다. 어쨌든 반갑다. 한나라당에 안상수 전 원내대표 같은 열혈 좌파 척결론자만이 아니라 진일보한 생각을 가진 의원도 있다는 게.

하지만 이 정도로 감격하기엔 이르다.  홍 의원의 말은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뜻일 뿐 한국은 실제로는 여전히 좌파로 살아가기에 불편하고 고달픈 나라다. 도리어 사회 제 분야에서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치는 물론 학문, 법조, 언론, 교육, 노동,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좌파로 규정된다는 것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좌· 우는 정책노선의 차이일 뿐”

가령 전교조 명단 공개에는 좌파 교사 색출이란 심리가 깔려 있다. MBC 파업에서도 김우룡씨의 ‘좌파 청소’ 발언이 중대 촉발 요인이 됐다. 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하고 천안함 사건도 안보를 소홀히 한 좌파정권 탓으로 돌리는 풍토가 자연스럽다. 나아가 이 사건에 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마저 경청하려 하기보다는 ‘친북 빨갱이’ 좌파란 선입견부터 작동시킨다.

이것은 정당한 것인가. 지난 2년여 사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지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자. 질문은 두 가지다. 아무나 좌파로 규정하는 게 옳은가. 좌파인 게 나쁜 건가.

‘레드 콤플렉스’는 각종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했다. 색깔론 공격을 당하면 당과 후보들은 자신이 친북세력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레드 콤플렉스의 퇴색은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이 붉은악마와 함께 응원을 펼친 것이 상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시대착오적 레드 콤플렉스가 부활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느낌을 준다. 안상수류의 사상검증, 색깔론이 기승을 부린다. 여기엔 법도, 당사자의 양심도 소용없다. 특정 이념 자체를 금지하고 규제하는 법은 없다. ‘좌파는 이런 것’이라고 규정한 법도 없다.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 고무 등을 금한 국가보안법이 있을 뿐이다.

또 홍 의원 말대로 좌파인 게 무슨 죄가 아니다. 유럽에는 좌파당이란 이름을 내건 사회주의 정당이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 있다. 좌파와 우파 정권 교체가 일상적인 일이다. 얼마 전 영국엔 우파 보수당과 중도좌파 자유민주당이 연립한 동거정부가 들어섰다. 우리에게 분단이란 한국적 특수성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이 땅에서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좌파로 낙인찍고 척결하고 처단하는 구실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하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발표되면 내연하던 대북 보복론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염려되는 것은 비이성적 징고이즘의 발호다. 이미 명확한 증거 공개를 요구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향해 친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성적 대처 요구를 곧바로 북한 무관론, 이적행위로 해석하는 행태는 문제 해결을 방해할 뿐이다. 그것은 한 줄로 서기를 강요하는 획일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해상에서 미 해군 구조함 살보함이 수색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안상수류 사상검증 색깔론 기승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년 반 후엔 후세인이 테러를 지원했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 증거가 나왔다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테러와 관련이 없었고 대량살상무기도 없었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의 저자 이진에 따르면 테러 얼마 후 TV토론에서 한 여기자가 응징보다는 반성의 계기로 삼자고 말하자 TV를 보던 한 공화당 지지 노신사가 흥분해 “빨갱이 같은 ×”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성적 대처를 주문하는 데 색깔론을 들이댄 것이다.

'김철웅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번째 주(州)면 족할까  (0) 2010.06.29
진보가 이겼나  (0) 2010.06.08
전근대적인, 너무나 전근대적인  (0) 2010.04.27
연결된 세상사  (0) 2010.04.06
학벌이란 노비문서  (0) 201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