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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비(非)논리·사(詐)논리

중국 불법어로 선원의 한국 해경 살해사건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본질과 관계가 전연 없는 ‘한국 좌파’들을 비난하는 주장들이 눈길을 끈다. ㅈ일보는 어제 ‘해경 살해 앞에 고개 처박고 벙어리 된 한국 좌파의 국적’이란 사설을 썼다. 말이 사설이지, 밑도 끝도 없이 ‘좌파’에 대한 격렬한 저주로 일관하고 있다. 사설은 국민적 분노가 높은데 좌파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 철조망을 넘어 공사장에 난입하고 경찰을 위협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12월 16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어 2002년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졌을 때 좌파들이 드러낸 격렬한 반응을 회고했다. “여중생들의 시신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부시 대통령은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아우성쳤다”고 했다. 그런 다음, 한·미 FTA로 시선을 옮겨, 좌파들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한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며 지금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면서 “아직 주권 침해가 일어나지도 않은 ISD엔 난리를 치면서도 눈앞에 벌어진 해경 살해라는 주권 침해에는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념 등 다른 문제를 떠나, 이 사설은 지극히 초보적인 논리적 오류를 한꺼번에 저지르고 있다. 첫째, ㅈ일보의 가없는 분노가 ‘좌파’로 향한 논리적 이유가 없다. 뜬금없이 적개심이 불타고 있다. 논점이탈이고, 흑백논리다. 둘째, 부적절한 비교다.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과 해경 살인은 별개의 사건이다. 상대 국가가 다르고 사건 내용이 다르며 상황이 다르다. 이걸 주권 침해란 말로 동일시하려는 것은 견강부회다. 셋째, 수명 끝난 색깔론을 또 끌어들였다. “한국 좌파의 국적” 운운은 극우가 잘 쓰는 “북한 가서 살아라”의 새 표현이다.

엊그제는 ㅎ경제신문이 ‘중국해적 경찰 살해사건, 좌익들은 말이 없고…’란 비슷한 사설을 썼다. 앞서 ㄷ일보는 2008년 7월 ‘금강산 죽음엔 한 자루의 촛불도 안 드는 자들’이란 사설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촛불시위 세력이 금강산 관광 중 사망한 박왕자씨를 위해서는 촛불 한 자루도 밝히지 않는다고 썼다. 이런 글들의 공통점은 주장이 앞서다보니 비약, 확대해석, 성급한 일반화, 이분법을 일삼아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괜히 그럴 가치도 없는 얘기를 꺼냈나.

입력 : 2011-12-15 20: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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