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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정치와 예의 

공자가 길을 가다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사연인즉 오래전 시아버지와 남편이 각각 호랑이에게 물려 숨지더니 이번엔 아이마저 호랑이의 제물이 됐다는 것이었다.
산 아래에도 마을이 있지 않냐고 묻자 여인은 “그곳은 관리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 도저히 살 수가 없다. 호랑이가 있어도 여기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
공자가 산 전국시대는 예(禮)와 악(樂)이 무너져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공자는 이런 혼란은 무력이 아니라 서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공경하는 예를 회복함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 등 수많은 성현들이 이른바 예치(禮治)를 가르쳤지만 현실에서 예의는 거의 언제나 정치와는 거리가 먼 덕목이었다. 권력투쟁, 권모술수부터 떠오르는 음험한 정치판과 예의는 영 안 어울리는 조합인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후보가 엊그제 라디오에 나와 ‘예의’를 입에 올렸다.
사회자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선거 지원을 요청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다시 부탁드리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전날엔 ‘염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로 보아 그는 초접전으로 펼쳐지고 있는 선거전에서 안 원장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말 꺼내기를 망설이는 것 같다. 예의니 염치니 하는 말은 그래서 나왔으리라.

예의론, 염치론이 나오는 심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이 선거는 이기는 게 목표다. 출마해 선전하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족하지 않다.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키로 결심했으면 그만한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안 원장이 나서면 박빙 구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으리라는 건 한나라당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둘째, 지원 요청은 야합·협찬이 아니며 굴신도 비겁도 아니다. 저 네거티브의 달인들은 별별 논리를 동원하고 있지만 그건 박 후보가 확 바꾸기를 바라는 구태정치의 모습들일 뿐이다. 당초 두 사람이 뜻을 합친 게 이런 이전투구 정치판을 바꿔보겠다는 뜻 아니었나. 이보다 더 뚜렷한 목표는 없다. 그렇다면 아마추어리즘의 굴레를 벗어야 한다. 베버가 말한 ‘악마적 힘’이 작동하는 정치판에서 이런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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