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어떤 박봉타령  

박봉의 다른 표현인 ‘쥐꼬리만한 봉급’은 절묘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기막힌 표현은 우리말에만 있지 않나 한다. 월급날이 와도 많은 가장들의 어깨를 처지게 만드는 게 쥐꼬리만한 봉급이다. 벌써부터 마누라의 ‘쥐꼬리…’ 타박이 들리는 것 같아 편치 않다. 이래저래 박봉에 시달리는 서민과 쥐꼬리만한 봉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조현오 경찰청장(오른쪽 사진)이 박봉과 낮은 처우에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엊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왜 (장관이 아닌) 차관급 보수를 받아야 하느냐”며 “내가 휴가를 가나, 주말에 쉬기를 하나”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쥐꼬리…’란 말만 안 썼지, 그 심정이 서민들의 박봉타령이나 진배없어 보인다. 설마 경찰청장이 그럴 리가,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미국은 경찰이 연방공무원 보수의 2배를 받고 일본도 (일반직 공무원보다) 더 많이 받는데 유독 한국 경찰만 적게 받는다.…우리나라 경찰 직급이 일반직보다 낮고 연금도 평균 181만원으로 일반공무원보다 적다.…이번에 수당은 대폭 올랐지만 기본급이 너무 낮다. 국민들도 보수 제대로 줘가며 부려먹어야지 처우도 제대로 안 하면서 부려먹는 것은 곤란하다.…”

그가 작심하고 기자들에게 경찰 처우 불만을 토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경찰을 대변한 말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해량(海諒)할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13만 경찰의 총수다운 무게와 균형감각을 보여주기보다는 경찰 내부 불만을 부채질이라도 하려는 듯 여과없는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건 장관급은커녕 사려깊은 일선 경찰서장급도 못 돼 보인다.

정말로 경찰 처우 개선을 바라는 지도자라면 달랐을 것이다. 고생하는 부하들 얘기만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자기 보수가 낮다느니 어떻다느니 떠벌리는가. 또 경찰·일반직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에 스스로 고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공직자가 어디 있을까.
그는 미국, 일본 경찰과 우리를 비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아둔한 단순 비교다. 요즘 극우들에게 유행하는 천박한 말버릇을 빌려 권하고자 한다. “미국, 일본이 그렇게 좋다면 그곳에 가서 경찰 해라.” 세월 참 좋아졌다. 경찰청장이 박봉·처우 타령이라니. 청년실업자는 넘쳐나는데. 서민들은 진짜 박봉에 탄식하는데.

<김철웅 논설실장>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2008 촛불과 2011 ‘점령하라’  (0) 2011.10.24
[여적] 정치와 예의   (0) 2011.10.21
[여적] 홀대받는 한국어 강좌  (2) 2011.10.09
[여적] 인간   (0) 2011.10.06
[여적] 완벽한 정권  (5) 2011.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