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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외국어 교육

1979년 12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전격 침공했을 때 미국은 신중하게 대처했다. 소련과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이 반군 세력에 무기 등을 지원한 것이다. 그만큼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남하를 막는 데 있어 사활적인 요충지였다. 따라서 미국에는 전쟁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정보력이 절실했다.
그러나 미국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러시아어와 아프가니스탄어(파슈투어, 다리어)의 해독 문제였다. 아프간어는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인력이 미국에 절대 부족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도 미국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나 보다. 9·11 이후 발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속에서도 미군은 현지어 구사자 부족에 시달렸다.
경우에 따라 외국어는 국가안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전날 알 카에다 용의자들은 “내일이 제로 아워다” “경기는 내일 시작된다”는 교신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미국 정보당국은 이런 교신 내용을 감청하고도 공격 당일에야 번역하는 바람에 시기를 놓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국가안보외국어구상’(NSLI)을 발표했다. “외국어는 국가안보이자 경제다”라는 구호 아래 엄청난 돈을 쏟아부을 작정인가 보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무·국방·교육장관, 의회, 전국 공·사립대 총장 등이 총동원돼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2007 회계연도에 다양한 외국어 능력 강화 프로그램으로 1억1천40만달러의 예산을 짤 예정이다. 또 국방부는 5년에 걸쳐 7억5천만달러를 투입한다.

미국 고교생 가운데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44%에 불과하다. 미국이 외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할 이유다. 제2, 제3외국어를 하는 외국 학생들이 영어만 하는 미국 학생보다 경쟁력이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어 교육마저 ‘안보’ 구상과 연계해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조금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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