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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북한 가서 살라고?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꺼내 물의를 빚은 “북한 가서 살아라”는 말에는 면면한 전통이 있다. 분단국가 외교 수장으로서 해선 안될 말을 내뱉었지만 독창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적어도 온라인 논쟁에선 일상적으로 쓰인 지 오래다.
 
이 말을 발설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심리는 단순 명쾌하다. 일종의 삼단논법이 동원된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편지를 유엔 안보리에 보낸 것을 예로 살펴 보자. 이 행위는 곧 정부 비판이며 친북, 나아가 이적행위와 동일시된다. 정운찬 총리는 이를 두고 국회에서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거기서 멈췄다.

하지만 극우파들은 “그럴 거면 북한 가서 살아라”로 삼단논법을 완성시켰으리라. 즉 정부를 비판하면 비(非)국민이고 고로 친북이므로 북으로(아니면 감옥으로) 가란 논리다. 이 거칠고 단순한 논리가 기나긴 세월 위세를 떨쳐왔다. 

경기 평택에서 토끼를 키우던 오종상씨(69)는 이런 일을 겪었다. 1974년 5월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반공, 근면 등이 주제인 웅변대회에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이북과 합쳐서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말을 했다. 여고생은 선생님에게 이 말을 전했고 선생님은 오씨를 신고했다. 오씨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반공법 등 위반죄로 3년형을 살았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중년이 된 여고생은 “그때는 반정부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빨갱이, 간첩이라고 배워 선생님에게 말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작금의 ‘북한 가서 살라’ 현상은 이런 유의 숱한 사연들이 쌓여 한국인의 원체험처럼 남아 있다가 과거 퇴행 정권에서 부활하는 게 아닌가 한다. 

남북문제와 관련해 정권을 비판한다고 해서 북한 체제 옹호로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북한은 좌파도 진보도 아니다. 공산당독재, 국유제, 계획경제가 파괴됨으로써 사회주의사회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북한에서 살고 싶어 하는 열혈 친북·종북주의자가 넘쳐난다고 저들은 믿는 것인가. 

“빨갱이 ××. 북한 가서 살아라.” 진보·보수, 좌·우를 떠나 한국사회 개명성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이 말의 존속 여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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