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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코란 불태우기

거의 모든 종교가 용서를 가르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다. 예수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했다. 이런 가르침은 성경 안에 가득하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거나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까지 한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죄와 허물 많은 인간이 영생과 천국을 소유하는 거룩한 은총을 입었으니 그렇게 살라고 한다.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등 다른 종교들도 용서를 강조한다. 그런데 세상은 용서가 넘치기는커녕 갈수록 각박하고 살벌해지는 것 같다. 첫번째 이유야 사이비만 많고 제대로 된 신자가 없어서일 거다. 둘째는 종교가 겉으로는 용서를 말하면서도 다른 종교나 종파를 배척하고 더 나아가 적대시하기 때문이리라. 새뮤얼 헌팅턴이 지난 세기말 21세기 무력충돌은 이념보다 문화·종교적 갈등 때문에 빚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게 어느 정도 들어맞는 듯하다.

냉전 후 세계는 종교와 민족 정체성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내전과 인종청소를 경험하고 있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도 문명충돌적 양상이 있다. 미국이 발을 빼려는 이라크에선 시아·수니파 간 종파갈등이 거세다. 

이렇게 현실에서 종교와 용서는 조화보다는 상극이 될 때가 많다. 신앙에 인간의 독선과 아집이 끼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것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은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로 이어진다. 흔히 보듯 열혈 기독교인들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주장하는 심리도 그렇다. 9·11 후 두 이슬람 국가를 침공한 조지 부시의 머릿속에도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가르는 근본주의적 기독교관이 깔려 있었다. 

9·11 9주년을 앞두고 미국에서 때아닌 ‘코란 불태우기’ 행사가 예고돼 논란이 뜨겁다. 플로리다주의 한 교회 목사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이슬람의 위험성에 항의한다는 뜻으로 이런 일을 벌인다고 한다. 행사는 ‘코란 소각의 날’이란 이름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무슬림은 코란 모독을 극도로 불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목사는 “왜 이슬람 신자들은 경고를 보내고 우리는 당하기만 해야 하느냐”며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흡사 대 북한 상호주의 주장을 듣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