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혐오범죄 7% 줄었지만 아시안 혐오범죄 150% 증가>

 

며칠 전 신문에서 ‘호신용 페퍼스프레이’란 칼럼을 읽었다. 뉴욕에 사는 한국여성이 그런 제목의 글을 쓴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미국에서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아시안 혐오범죄 때문이다.

 

필자는 “뉴욕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주에 사는 아시안 친구들은 테이저건이나 권총에 보디캠까지 장착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안심이라며 정보교류 중”이라고 했다. 그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 피부에 와 닿는다.

(뉴욕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미국 뉴욕에서 4일 시위대가 증오범죄에 맞서 흑인과 아시아계가 연대할 것을 촉구하며 '흑인+아시아인'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는 사는 게 전보다 불안해졌다. 지난해 혐오범죄는 7% 줄었지만 아시안에 대해서만 150% 증가했다. SAH라는 아시안 단체에서 아시안 혐오범죄 대처훈련은 4월까지 모든 예약이 순식간에 완료됐다고 한다. 길이나 마트에서 단지 아시아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쌍욕을 듣고 주먹질을 당하기도 한다.

 

작년 퓨리서치 센터가 9654명에게 물어보니 코로나19 이후로 미국 내 아시아인의 31%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경험했고, 26%는 누군가의 물리적 폭력이 두렵다고 답했다. 또 10명 중 4명은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더 흔해졌다고 응답했다.

 

지난 4일 뉴욕에서는 3000명의 시민들이 다소 이색적인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증오범죄에 맞서 흑인과 아시아계가 연대할 것을 촉구하며 ‘블랙+아시안’이란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한인여성 4명이 사망한 지난 달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마사지 업소 총격사건에서 보듯 미국 내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흑인과 아시아인이 연대하라는 시위까지 벌어지는 까닭은 뭔가.

 

가해자가 흑인인 경우가 적기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뉴욕 맨해튼에서 흑인 남성 브랜던 엘리엇(38)이 마주 보며 걸어오던 필리핀계 여성(65)에게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는 모친 살해한 전력으로 17년간 복역한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그는 아시아계를 비하하는 말을 하며 “당신들은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고 외쳤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편의점에서 24세 흑인 남성이 쇠막대기를 갖고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이 남성은 욕설과 함께 한인 주인 부부를 향해 “중국인 XX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같은 날 뉴욕 지하철에서도 50대 흑인 남성이 44세 아시아계 여성과 세 자녀에게 인종 비하 발언을 하며 두 차례 침을 뱉었다. 이 남성은 여성의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찬 뒤 도망쳤다.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임에도 미국에서 인종주의적 사건은 흔하다. 지난 11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흑인 청년 운전자가 경찰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벌어진 지역은 지난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목을 눌려 질식사한 사건과 가까운 곳이었다. 이 사건들에서는 백인은 갑, 흑인은 을이라는 전형적 갑을관계의 ‘철칙’이 작동했다. 그런데 최근 혐오범죄에는 다른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즉 인종차별 피해로 고통을 겪어온 흑인들이 새로운 가해자로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약자의 비극이 절실하게 와 닿는 건 강자와 투쟁할 때가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서로 지켜줘야 할 약자들 사이의 관계가 파괴될 때다. 그럴 때 우리는 강자와 싸울 때 느끼는 분노와는 또 결이 또 다른 감정, 당혹과 서글픔을 느낀다.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일까?

‘여적여’란 말이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의 줄임말로, 그런 시각으로 세상사를 보면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며느리 킬러는 시어머니였고, 신데렐라를 괴롭힌 사람은 새엄마와 언니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안 맞을 때 또한 많다. 이걸 생각하면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다. ‘약자의 적은 약자’란 말도 그렇다. 저소득층, 막노동꾼이 자기보다 더 약자인 예컨대 알바생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 이 말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더 많다.

 

미국 혐오범죄도 그렇다. 아시아계를 공격하는 측이 주로 흑인으로 알려졌지만 통계적으로 명확한 것은 아니다. 가해자에 대한 정밀한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애틀랜타 총기 난사범은 21세 백인 남성이었고,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휠체어에 앉은 84세 노인을 양발 차기로 넘어뜨린 23세 남성은 히스패닉이었다. 추측하건대 가해자 통계가 없는 것은 그게 다인종국가인 미국의 사회통합에 이롭기는커녕 해가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일 것이다.

 

약자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보고 확대해석하는 것 역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강자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21.04.16 09:36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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