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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유산이 든든한 정치적 자산인 두 여성 정치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한 사람은 박근혜 의원이고, 또 한 사람은 프랑스의 극우정치인 장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다. 두 사람을 불러낸 것은 공통점도 있고 비교되는 것도 있어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당수(42)는 내년 5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예 정치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제쳐 다음 대선에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더욱이 며칠 전 사회당의 유력 후보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가 성폭행 사건에 휘말린 것은 그에게 뜻밖의 호재일 거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 경향신문 DB

신예라곤 해도 마린이 부친의 후광 덕택에 거저 현재에 이른 건 아니다. 세 자매의 막내인 그가 아버지가 이끄는 국민전선에 입당한 것은 18세 때였다. 파리 제2대학을 졸업한 뒤 변호사를 거쳐 광역의회 의원, 당 부대표, 유럽의회 의원, 2007년 아버지가 출마한 대선 대책본부 대변인 등 정치경력을 쌓았다. 세 딸은 학교에서 파파가 ‘파시스트’란 놀림도 받았고 마린이 8살 때는 가족이 잠자다 폭탄공격을 당한 적도 있다. 

마린은 올해 초 아버지 뒤를 이어 당수에 오르면서 대선 행보가 빨라졌다. 그러면서 주력한 것이 아버지와의 차별화다. 극우정치인 장 마리 르펜(82)은 망언 제조기였다. 

박근혜·마린 르펜 후광정치 비슷

2002년 대선에서 시라크와 함께 2차 결선투표까지 간 적도 있지만 항상 과격 극우발언이 문제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인종우월주의 주장, 나치 찬양, 일본 신사참배 등으로 국민에게 거부감을 안겼다. 딸은 국민전선의 극우적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한 당내 조직 ‘르펜세대’를 이끈 경험을 살려 당을 개조하고 나섰다. 우선 할 일은 아버지가 만든 인종주의자, 반유태주의란 멍에를 벗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파’를 부각시키려 애썼다. 그는 아예 국민전선이 극우정당임을 부인했다. “반대자들이 지지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극우당이란 이미지를 붙인 것이다. 우리는 공화국의 가치를 존중하고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따랐다. 40년간 모든 선거에 후보를 냈고 결과에 승복했다.” 이 같은 변신 노력에도 프랑스인 약 70%에게 국민전선은 무조건 싫은 존재다.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린이 좋은 말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의심한다. 그 점에서 그의 대선 고지 정복에서 최대 난제는 아버지 유산의 청산일 것이다. 
 
박근혜 의원 | 경향신문 DB

박근혜 의원에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은 어떤 의미인가. 그에게 박정희는 여전히 결코 부정되어서는 안될 신성한 무엇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버려야 독재자의 딸, 유신공주의 굴레도 함께 벗을 수 있다고 말해왔지만 그게 먹히는 것 같지 않다. 사실 범인들도 부친이 자신에게 끼친 것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인간된 도리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 박근혜에게도 거기엔 필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터다. 

엊그제가 5·16 쿠데타 50주년이었다. 박 의원은 올해도 5·16 관련 행사에 일절 관심을 안 보였다. 하지만 그가 이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일컬었던 마음은 변함 없을 것이다. 또 “유신체제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할 것이다. 박 의원은 혈육과 정치철학의 문제를 넘어, 박정희의 유산을 결코 포기해선 안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엊그제 중앙일보에 실린 한 칼럼은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다. ‘나를 바꾼 박정희’란 칼럼에서 필자는 자신이 박정희의 부하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모두 한결같이 칭송만 했다고 했다. “이것만 봐도 후임자들은 박정희보다 훨씬 불완전한 지도자였다. 그래서 나는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가 아니었어도 가능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비약이 심한 글이지만 박정희에 대한 엄숙한 신앙 같은 것이 느껴진다. 

유산청산 거부 - 수용 ‘대조적’

박 의원은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이란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 발표를 “가치가 없고 모함이다”라고 반박했다. 아버지의 정치적 과오를 인정 못한다는 것이다. 마린 르펜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 아버지의 유산을 청산하려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는 것과 사뭇 대비된다. 우석훈 2.1연구소장은 어제 칼럼에 “왜 정말 이상한 대통령이 이 나라를 꼴랑 집어삼키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다음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그냥 이 나라를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고 썼는데,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될 것 같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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