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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노래, 자연의 친구

 노래에 사랑 다음으로 자주 올라오는 단골 메뉴는 뭘까. 자연이다. 미국의 컨트리 송라이터 로드니 크로웰은 “인간이 작곡한 최초의 노래는 아마도 날씨, 태양, 달, 비 같은 자연요소들을 다룬 노래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창기 인류한테는 이런 것들이 정말로 중요했을 테니까.【주1】

 

  단골 메뉴란 말은 노래의 주제(主題)와 소재(素材)로 자주 사용된다는 뜻이. 노래의 중심 생각이나 재료라고 보면 되겠다. 노래엔 크로웰이 말한 날씨, 태양, 달, 비 말고도 수많은 자연현상, 동식물들이 나온다. 단순히 자연이란 말로 뭉뚱그리기엔 너무나 광범위하다. 동물만 해도 개에서부터 새, 물고기, 나비 같은 곤충까지 다양하다. 식물은 각종 나무, 꽃들부터 잡초까지 나온다. 산과 들, 바다, 별 등 대자연도 친숙한 소재다. 인간 정서에 영향이 큰 사계절도 놓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1978·정태춘 작사 작곡)을 들어보자.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 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에 세찬 바람
 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 가쁜 벗들의 말발굽 소리
 누가 내게 손수건 한 장 던져주리오 내 작은 가슴에 얹어주리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
 하늘에 빗긴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그늘진 마음에 비 뿌리는 젖은 대기의 애틋한 우수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주리오
 누가 내 운명의 길동무 되주리오 어린 시인의 벗 되주리오
                              <시인의 마을> 가사

 

 노랫말 전편에 자연과 벗하는 시인의 정서가 가득하다. 이 노래에 대해 누군가 “시인이라 함은 자연과 생명을 경외하는 영혼의 소유자”란 댓글을 달았는데, 시인을 잘 정의한 것 같다. 바람, 일몰의 고갯길, 하늘에 빗긴 노을, 밤, 비, 젖은 대기는 모두 시인이 사랑하는 자연이다. 이 노래 후렴의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부분은 처음 발표 때는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이었다가 심의로 개사됐다고 한다. 나도 이제껏 원래 가사를 기억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개사됐는지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다.…벌레소리나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귀가 편안해지고 자연히 마음도 차분해진다. 도시에는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온갖 소리가 난무한다. 그러다 보니 소리를 듣지 않는 방법까지 찾아다닐 정도다.”【주2】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개를 데리고 자연 속을 자주 산책했다. 자연의 소리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주3】


 이정선도 자연 속에서 행복해 하는 노래를 불렀다. <구름 들꽃 돌 연인>(1976)이나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라고 다짐하는 <산사람>(1978)이 그렇다. 슬픈 분위기의 <섬소년>(1974)도 있다.

 

 

                           달맞이꽃

 

 

 수많은 노래들이 자연을 통해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감정이입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불어 넣는 것으로, 자연이야말로 좋은 감정이입 대상이다. 나는 얼마 전에 <마포종점>이 전차에 탁월한 감정이입을 했다고 썼는데, 역시 탁월한 사례로 마음에 와닿는 것이 이용복이 부른 <달맞이꽃>(1972·지웅 작사, 김희갑 작곡)이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밝은 밤이 오면 홀로 되어
 쓸쓸이 쓸쓸이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한새벽 올 때까지 홀로 되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하략)
                                        <달맞이꽃> 가사

 

 달맞이꽃은 2년생 초본으로서 해질 무렵 피었다가 해가 뜨면 꽃잎을 다물게 되므로 미국에서는 이브닝 프림로즈, 중국에선 야래향(夜來香), 일본에선 월견초(月見草)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그리움과 기다림, 애절함의 상징으로 시와 노래 가사에 자주 인용된다. 밤에 피는 생태가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이 두 문장이 노래의 모든 걸 함축해준다. 가사엔 ‘님’과 비슷한 말은 전혀 안 비친다. 그렇지만 님를 향한 화자의 진한 그리움이 그대로 전달된다.

 

 나무와 별이 나오는 어니언스의 <초저녁 별>(1974·이수영 작사 작곡)도 감정이입이 뛰어나다.

 

 

 

 

 먼 곳에서 흘러온 초저녁 별 하나가/ 느티나무 가지 위에 나를 보고 멈추면
 오늘도 붓대 들어 쓰다가 걷고 나서/ 느티나무 가지 위에 지난 꿈을 새긴다
 옛 동산에 종소리 달려가던 너와 나/ 긴 머리에 머문 눈이 별빛 따라 흐르면
 오늘도 붓대 들어 쓰다가 걷고 나서/ 느티나무 가지 위에 지난 꿈을 새긴다
                                                                    <초저녁별> 가사

 

 가사엔 디테일이 없다. 그저 먼 데서 온 초저녁별, 느티나무, 그리고 무언가를 쓰던 나, 이렇게 3자가 단순 담백하게 그려졌다. 초저녁별이 나를 보고 멈춘 곳이 느티나무 가지 위다. 그렇게 믿는 거다. 편지 쓰는 일도 없고, 있다 해도 쓰지 않고 치는 이 시대에 듣는 ‘붓대 들어 쓴다’는 표현도 예스럽고 그윽하다.


 어니언스는 ‘양파들’이란 이름답게 자연과 관계된 노래를 많이 불렀다.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노래한 <외길>(1974·김정호 작사 작곡)을 비롯해 <작은 새>(1974·김정호 작사 작곡), <저 별과 달을>(1974·김정호 작사 작곡), <외기러기>(1974·임창제 작사 작곡) 등이 있다.

 

 돌아가는 저 길에 외로운 저 소나무
 수많은 세월 속을 말없이 살아온 너
 돌아가는 저 길에 네가 좋아 나 여기 찾아와 쉬노라
 철새들 머무는 높다란 저 언덕 위에
 비바람 맞으며 홀로 서있어
 내 인생 외로움을 말해주려 마
                      <외길> 가사 

 

   권성연의 <한 여름 밤의 꿈>(1990·권성연 작사 작곡)엔 님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자연물·자연현상들이 동원된다. 별, 바다, 파도, 바람, 그리고 여름밤이다. 세련된 화성 구사, 그리고 절묘한 감정이입이 돋보이는 노래다. 밤바다의 파도를 보며 ‘외로운 춤을 춘다’고 표현한 것을 보라. 파도는 그냥 밀려오는 건데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에 외로움이 고요히 밀려들기 때문이다. 청마 유치환은 파도를 보며 이런 격정의 시를 썼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시 ‘그리움’ 전문). 그의 격정과 이 노래의 절절한 외로움, 그 아픔의 깊이를 비교할 수 있을까.

   권성연은 이 노래로 1990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아련히 잠들어있던 한 여름 밤의 추억들을 일깨워주고는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별들도 잠이 드는 이 밤 혼자서 바라보는 바다
 외로운 춤을 추는 파도 이렇게 서성이고 있네
 오늘 밤엔 나의 곁으로 돌아와 주오 그대
 워 귀에 익은 낮은 목소리 다시 들려주오
 그대는 내 모습을 내 마음을 잊었나
 차가운 바람이 내 사랑을 지웠나
 모든 게 예전 그대로이고 달라질 이유 없는데
 워 내가 그대를 그리는 것은 한 여름 밤의 꿈
                               <한 여름밤의 꿈> 가사

 

 

권성연의 <한 여름밤의 꿈>

 

 

 어렸을 적 불렀던 나무에 관한 동요 하나가 생각난다. 1950년대 후반에 발표된 <겨울나무>(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다.

 

 

 

                                 겨울나무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겨울나무> 가사

 

 

   나는 이 동요를 ‘음악이 주는 위로’란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전략) <겨울나무>란 동요가 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로 시작하는 가사가 동요답지 않게 심오하다. 특히 2절이 그렇다.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이 정도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고 한 <장자>가 생각난다.【주4】

 

 자료를 보니 작곡자 정세문 선생은 겨울철 나무가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가겠노라 다짐했던 자신의 처지인 듯하다는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전달된 건지 작사가 이원수의 가사도 다분히 철학적이다. 나무는 한 번 자리잡은 곳에 대해 불평할 줄 모른다. 안분지족할 줄 안다. 공자는 논어 자로(子路)에서 나무를 강하고 굳세고 어눌한 것과 더불어 인(仁)에 비유하고 있다. 그 질박함 때문이다.【주5】 동요의 겨울나무나 <외길>의 소나무나 그 성품은 똑같다.


 
 이태원은 특이하게 새 노래를 시리즈로 부른 가수다. 1982년 <솔개>(윤명환 작사 작곡)를 시작으로 1983년 <고니>(이건우 작사, 김현 작곡), 1985년 <타조>(이건우 작사, 김현 작곡)를 연속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까치> <앵무새>도 노래했고, 정광태가 히트시킨 <도요새의 비밀>(1983·박인호 작사 작곡)도 다시 불렀다. 그는 새 노래를 잇달아 부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개나 고니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들이지요. 그런 새들의 세계를 통해 자유를 노래하고 싶어요.”【주6】지금은 그 자유란 게 막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땐 절박하고 의미심장했다. 솔개는 소통부재의 세상에서 차라리 침묵을 선택하고 마는 우리들 가운데 일부를 상징한다.

 

 

                     솔개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권태 속에 내뱉어진 소음으로 주위는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종잡을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
 바로 그때 나를 비웃고 날아가 버린 나의 솔개여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

 애드밸룬 같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의미없는 하루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움직이려나
 머리 들어 하늘을 보면 아련한 친구의 모습
 수많은 농담과 한숨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
                                           <솔개> 가사

 

 인순이는 2007년 <거위의 꿈>(1997·이적 작사, 김동률 작곡)을 리메이크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즈음 내가 경향신문 여적난에 쓴 ‘인순이의 꿈’을 전재한다.

 

 가수 인순이의 학력은 중졸이다. 중학교 땐 교과서를 팔아 엄마와 이모, 여동생이 며칠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포천 청산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 결혼한다고 해서 포천 백의리에서 서울 수유리까지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책을 팔아 여비로 거금 500원을 만들긴 했는데 가족들 생각 때문에 고민하다 가지 못했다. 인순이는 작년 콘서트에 그 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다. 히트곡 ‘거위의 꿈’을 절반도 다 못 부르고 목이 메어 버렸다.
 작년 말 인순이는 한 대학에서 특강을 했다. 혼혈로서 겪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고생담과 가수로 성공하기까지의 곡절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어렸을 때는 혼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사회에 나오니 혼혈에 대한 편견의 벽이 높았다. 혼혈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도 근본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인순이는 노래 ‘거위의 꿈’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노래를 만든 사람이 전생에 나와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내 처지와 똑같은 노래를 만들었는지 깜짝 놀랐다. 결국 이 노래로 가요 프로그램 1위도 해볼 수 있었다.”
 ‘거위의 꿈’은 가수 이적이 1997년 김동률의 곡에 가사를 붙여 완성한 노래라고 한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가사대로 인순이는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가수 생활 30돌을 맞은 인순이가 또 다른 소박한 꿈을 공개했다. 바로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공연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미국 카네기홀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예술의전당 오페라홀에서는 대중가수가 설 수 없다는 게 섭섭하고 속상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극장 측은 예술의전당은 작품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클래식 중심 연주장으로 인순이의 신청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고 밝혔다.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시대라는데 내년쯤엔 인순이의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주7】

 

 이 노래에서 하늘을 나는 꿈을 버리지 않는 거위는 운명의 벽을 넘어서겠다는 의지의 인간을 은유한다. 그 점에선 “아아아 날아라 날아라 타조야/ 우리도 언젠가는 날아갈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는 <타조>가 그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거위는 개 대신 집을 지키던 지혜로운 새다. 어렸을 때 짝을 잃은 거위가 짝을 찾아 슬피 울부짖는 모습을 애처로워 하는 공초 오상순의 수필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를 읽으며 짠한 심정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1994·신해철 작사 작곡)는 <거위의 꿈>이나 <타조>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날지 못하는 병아리에게 ‘날아라’라고 말한다. 신해철이 병아리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란 것을 처음 접한 게 1974년, 그걸 노래로 부른 게 1994년, 그로부터 다시 20년 뒤 신해철은 떠났다. <날아라 병아리>가 그를 추모하는 곡으로 연주되었다. 이 가사가 다가온다.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병아리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 두 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갯짓 하더니 새벽 무렵엔 차디차게 식어있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 줘
                                           <날아라 병아리> 가사

 

 어류도 노래에 나온다. 산울림은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라는 가사로 유명한 <어머니와 고등어>(1983·김창완 작사 작곡)를 불렀다.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1998·강산에 작사 작곡)도 있다. 유난히 긴 제목만으로도 왠지 힘 있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듯하다.

 

 

                        힘차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 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 가야 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가사

 

 

 곤충도 때론 훌륭한 노래 소재다.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개똥벌레에 비유한다면 파격은 파격일 거다. 신형원은 그런 노래 <개똥벌레>(1987·한돌 작사 작곡)를 불러 주목받았다. 인터넷에 누군가 올려놓은 사연이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찡하다. “초등학생 때 특히 1학년 때 청소시간마다 선생님께서 틀어주셨습니다. 그땐 너무 어린 나이라 가사 의미도 잘 모르고 그냥 좋은 노랜가 보다 하고 흥얼거리고 그랬는데 10년 후 다시 들어보니까 완전 소름, 가사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일 줄은 몰랐던 거죠. 개똥벌레라는 노래가 그렇게 슬픈 곡인 줄도 처음 알았다는….”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 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 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 나나나나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 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 나나나나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하략)
                                                                <개똥벌레> 가사


【주1】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마티, 2009) 36쪽
【주2】사이토 히로시, 음악심리학-마음을 컨트롤하는 소리의 기술(스카이 출판사, 2013) 35쪽
【주3】같은 책 195쪽
【주4】경향신문 2013년 5월 8일자 오피니언 김철웅 칼럼
【주5】강판권,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민음사, 2003)
【주6】동아일보 1984년 5월 11일자 ‘동물세계 소재로 인간 스트레스 해소’
【주7】경향신문 2008년 3월 6일자 여적 ‘인순이의 꿈’. 인순이가 그 뒤로 꿈을 이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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