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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대통령의 자존심


자존심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구태여 일개 서생과 대통령의 자존심을 비교한다면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공적 영역에서 대통령의 자존심은 국가적 자존심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지 않는지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국가적 자존심과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다. 드골은 많은 프랑스 국민에게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런던에서 BBC방송으로 대독 항전을 독려할 때나 대통령이 돼 ‘위대한 프랑스’를 내걸고 독자적 외교를 펼칠 때나 드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의 자존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대통령의 품격과 명예를 지키려 했다. 그는 죽으면서까지 자존을 지켰다. 자기 장례식은 국장을 원치 않는다며 추도사, 장송곡, 훈장·작위 수여 따위 일절 없이 검소하게 치르도록 했다.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을 세운 대통령으로만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의 발로였을 것이다.


                   이명박과 부시(2008).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국회를 찾아 한·미 FTA 비준 동의를 요청하면서 “자존심”이란 말을 사용했다. 비준 동의를 해주면 걸림돌이 되고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제안하면서다. 어떤 신문은 이 기사를 ‘주권국 대통령의 자존심을 걸겠다’는 제목으로 보도했지만 살펴보면 그런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재협상 약속을 받아오라는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나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며 “협정문에 우리가 요구하면 미국이 응하게 돼 있는 조항이 있는데, 오바마에게 제발 들어주라고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고 말했다. 주권국가로서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자존심을 걸겠다”는 무슨 결기의 표현이 아니다. 그저 자존심 때문에 미국에 누추한 말은 못 하겠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일단 비준부터 하자는 거다.

자존심은 중요한 것이지만 지고의 가치는 아니다. 이번 경우 중요한 건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자존과 국익이다. 또 그것이 골고루 돌아가게 만드는 문제다. 자고로 지도자가 잘못해 국민 자존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결과가 우려될 때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자기 자존심보다 국민의 자존심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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