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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역사의 기록

역사를 업으로 하는 역사학자를 빼고 역사란 말을 가장 즐겨 입에 올리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닌가 한다. 이들은 역사를 창조하고, 역사의 죄인이 되며,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고 자주 말한다.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든 사람치고 “후세 사가들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말 안 해본 이도 드물 거다.
이 “역사가 증명…운운”의 상투성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자못 비장한 버전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사회비평가 진중권은 이를 패러디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란 풍자적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다.

역사가 정치인들의 익숙한 수사가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행동이나 정책에 역사성을 부여하면 득 되는 게 많다. 엄숙하고 진중하며 사려깊어 보인다. 그래서 속으론 권력게임, 정치공학적 계산에 애면글면, 노심초사하면서도 겉으로는 심오한 역사의식의 이끌림을 받는 것처럼 가장한다. 별 것 아닌 결정도 역사적 결단으로 분식되는 까닭이다.
천안함 사건 때 구조작업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도 그 예다. 빈소에서 기념촬영을 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비난 여론이 일자 “역사의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 정도면 무슨 개그 프로 수준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또 ‘역사의 기록’을 들고 나왔다. 세종시 수정법안이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부결되더라도 이를 다시 본회의에 상정해 개별 의원들의 찬성 반대 내역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본회의로 끌고 가 봐야 부결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정치인이 역사를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역사를 들먹이는 데는 미국 정치인들도 뒤지지 않는다. 링컨 대통령은 이들 역사 논쟁에 단골 소재로 나온다. 중요한 것은 그 진정성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역사와 대면하는가다. 이 점에 있어 이 정권이 말하는 역사는 의심받아 마땅하다. 그 용례가 매우 선택적,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느닷없이 웬 역사 타령이냐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를 놓고 역사성을 말하기엔 이 정권은 너무 반역사적이다. 역사를 두려워한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렇게 역주행할 수 없다. 지금의 반노동 정책은 역사발전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친일 청산에 대해 일관되게 부정적인 이들이 역사를 말하는 게 참으로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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