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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별일 없이 사는 이들’ 의식 깨우친 리영희

가수 장기하는 ‘별일 없이 산다’란 노래에서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라며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자고 나면 놀라운 일이 터지는 세상에서 자기는 별일 없이, 걱정 없이 즐겁게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 세상에서 초연하게 산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 역설과 풍자가 강한 가사다.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사람도 있다. ‘별일 없이 산다’와 통하는 말인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니다. 입버릇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하지만 힘들고 바쁘고 피곤해서 “나 좀 건드리지 말라”는 뜻일 때가 많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속마음은 복잡한 생각들로 꽉 차 있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무념무상(無念無想)은 도달하기 몹시 어려운 도의 경지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일체의 상념을 떠난다는 게 범인으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동요가 없이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그리스 철학의 아타락시아도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무념무상이든 아타락시아든 피안의 경지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삶은 애당초 무념무상을 추구하는 도인의 풍모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실천적 지식인들로 자신도 불편하고 남도 불편하게 만드는 악역을 감수해야 할 운명이다.

리영희 선생이 타계하자 대학생, 운동권을 의식화시킨 지식인으로서의 삶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땅에서 의식화란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진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의식이 깨어나게 하는 것이란 사전적 의미에서 그는 분명히 의식화의 은사였다. 돌이켜 보면 선생의 팔십평생은 한순간도 도그마, 허위의식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그 치열함은 무념무상이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본인만 그런 게 아니라 그의 글을 접한 젊은이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두려움, 고통을 주었다. 그 점에서라면 그는 의식화의 은사이면서 동시에 원흉이었다. 

생전에 선생은 의식화를 피할 수 없는 심정을 중국 지식인 루쉰의 글을 빌려 토로했다. “철로 된 방에 갇힌 사람들이 죽어갈 때 그들을 깨움으로써 고통만 더 줄 것인가, 그래도 깨어난 그들이 그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